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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험난하지만 정국에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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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개헌특위가 30일 드디어 9차 개헌을 향한 역사적 출항에 올랐다. 야당 측이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면서 민의의 바람을 일으켰던 2·12종선 후 꼭 1년 반만에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작업이 국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개헌특위의 전도에 관해서는 낙관적 기대만큼 비관적 전망도 교차하고 있어 섣불리 순항을 예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국회 개헌특위의 작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여야합의에 의한 개헌」이라는 지극히 어려운 난관이 가로 놓여있고, 그 난관을 넘는데는 허다한 장애물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잇달아 당 대표 회동·3역 회동 등 고위회동을 가졌고, 이를 통해「올해정기국회 개헌안타결」이라는 원칙에 일단 의견접근을 보이고 있다.
29일 있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과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회담에서 이 총재는 정기국회전인 9월 20일까지 개헌안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려우면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타결하자는 연내 타결의견을 제시했고, 노 대표도 이에 동의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이같은 일정이라면 개헌특위는 국회에서의 개헌작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고 이를 확정짓는 국민투표는 내년 초까지 실시하면 된다.
노·이 양당대표는 이러한 합의개헌의 여건조성을 위해 그동안 여야간 현안이었던 의원기소문제·구속자 문제 등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부분적 합의를 하고있다.
30일 있은 노 대표와 이만섭 국민당총재와의 회담도 비슷한 합의를 하고있다.
그러나 각 당 대표간의 연내 합의개헌이라는 원칙합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대로 실현될 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우선 헌특에 대한 인식과 전략이 여야, 그리고 신민당 내에서도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그 운영방식에도 커다란 견해차를 보이고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개헌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보인 정통성시비등 대결자세, 합치할 수 없는 시각의 차이 등을 생각한다면 국회 개헌특위가 대화와 토론에 의해서 개헌안 조문을 하나씩 만들어갈 것이라고 소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야당 측은 개헌특위를 지금까지 구사해온「민의에 의한 압력」이라는 기본전술을 활용하는 무대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야당 일부에서는 헌특 자체에 거의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 측은 헌특을 그들이 지금까지 개헌의 당위성으로 주장해온 민주화공세를 펴는 기회로 삼아 여당 측에 압력을 가한다는 작전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사면-복권·구속자 석방·고문 등 인권문제를 비롯한 온갖 정치현안을 헌특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특히 사면·복권문제는 신민당 측이 국회 헌특이 구성되면 최우선으로 다룬다고 천명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개헌문제 타결의 최대 변수의 하나인 김대중씨의 정치적 거취와 직접 연관되기 때문에 야당 측은 이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정당 측은 정치공세의 봉쇄로 맞설 작정인 것 같다. 정치현안들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나 다루고 개헌특위는 오로지 개헌문제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정당은 개헌특위가 신민당의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당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기본인식의 차이 때문에 개헌특위의 진행은 초반부터 특위의 운영방식, 분과위 구성 등 소소한 절차문제를 놓고도 뒤뚱거리게 되어있다. 신민당 측은 국민들의 심정적인 지지를 받고있다고 생각하는 직선제와 사면·복권 등의 문제를 직접 국민들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방별 공청회를 주장하고 내외의 관심이 쏠릴 특위 벽두부터 민주화 결의천명을 요구하는 등 정치공세를 전개할 작정이다.
이에 대해 민정당 측은 지역공청회는 대도시에 국한하고 대신 국회내의 공청회·TV공청회 등의 활용을 주장하면서 개헌특위의 활동범위를 헌법안 토론 등에 집중시켜 철저하게 법률심의적 차원으로 몰고 갈 의도다.
이처럼 개헌특위의 운영방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물론 개헌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장기적인 전략파도 관련되는 것이다.
여야 모두 개헌안이 단기협상으로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내각책임제 방향으로 가고있는 민정당과 직선제 한가지만 고집해온 야당 측이 선뜻 타협을 할 수 있는 길이란 사실상 거의 막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기본권이나 경제조항 등 토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심의가 진행될 수 있지만 결국 여야의 관심은 권력구조와 선거방식에 집중되어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여야의 대립, 그리고 각 정파의 대립은 대단히 민감하고 그 어느 쪽도 쉽사리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각 정당·정파는 그들에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협상여건이 이뤄지기까지는 복안을 숨긴 채 절충을 벌이려할 것으로 봐야한다. 이렇게되면 권력구조에 관한 여야간 실질적 협상은 자연히 늦어지고 장기화되게 마련이다.
민정당 측이 그들의 개헌안 골격이 거의 다듬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8월 20일께나 되어 느지막하게 내놓을 생각으로 있는 것이나, 신민당 측이 그들의 별로 정치하지 못한 직선제헌법안을 두고 별로 손댈 생각을 않고 있는 것도 모두 그들 나름으로 협상의 시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이런 점까지 상정하면 국회개헌특위의 진행은 더더욱 지지부진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신민당 측이 권력구조의 타결시한으로 잡고있는 9월 20일과 여야대표들의 합의시한인 정기국회 말이 협상의 고비가 될 것은 틀림없다. 야당 측이 9월 20일 시한에 비록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그동안 개헌특위가 실질적인 실적을 거둘 전망을 보이지 못하면 비판의 표적이 될 것은 틀림없고, 특히 정기국회기간에도 협상진도가 불투명하게되면 그것은 새로운 사대발단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야당일각에서는 개헌특위를 장내외 범행투쟁의 한쪽 고리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개헌특위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판단하게되면 이를 장외투쟁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기도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야당 일각에서는 개헌특위자체를 장외투쟁의 발화점으로 이용하려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민정당 측은 이같은 기도를 가급적 피하면서 장외공세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여 개헌논의를 국회 안으로만 집중시키는 명분을 이 국회 개헌특위에서 구한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여야의 생각이 극도로 상반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개헌특위의 순항은 기대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러나 국회개헌특위가 구성됨으로써 여야는 지금까지처럼 주변적인 문제들에서 대립하는 단계를 벗어나 헌법이라는 본질문제를 놓고 실질협상을 시작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개헌특위를 통해 여야간에 광범한 접촉의 통로가 확보되고 본질문제에 관한 대화를 통해 여야간 인식의 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게된 것이다.
또 이 같은 접촉의 확대를 발판으로 개헌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할 막후협상의 통로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합의개헌의 성패는 결국 국회개헌특위가 이 같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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