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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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침 7시면 밥도 먹는둥 마는둥 아직 덜 깬 부스스한 눈으로 책가방은 오른편 어깨에, 체육복이 든 보조가방은 다른 어깨에, 도시락통은 오른손, 실내화가 든 신발주머니는 왼손, 그리고 커다란 스케치북은 옆구리에 끼고 그 몸으로 현관문을 겨우 밀어 연다. 아침마다 쇠사슬에 묶여 생전의 업보를 온몸에 주렁주렁 매단 지옥의 「스크루지」처럼 되어 학교로 향하는 모습-. 중학 2년인 우리집 큰딸아이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울러 평소 금실이 괜찮은 듯 싶은 우리 부부사이에 싸늘한 금이 생기는 것도 대개 이러한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애엄마의 눈에는 아무리 무겁게 얽어매도 불평 한마디 없이 걸음을 옮기는 그 애가 기특하고 강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저꼴로 어떻게 만원버스를 타겠느냐고 호통이라도 칠라치면, 그렇게 답답해 보이면 어서 자가용이나 하나 사면 될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간단히 내입을 막는다.
엄마의 극성때문에 딸애는 낮이든 밤이든 집에만 오면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들고 있어야 되고,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적점수라는 것이 그리 쉽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오랜 일선교사의 경험으로 안다. 그러니 성적표를 들고 오는 날마다 어김없이 울고 불고 초상집이 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서슬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서 나온 결과이니 그 점수에 만족하고서 애나 정상적으로 밝고 건강하게 키우자는 나의 하소연, 때로는 윽박지름이 애엄마의 맹목과 열정 앞에서 통할리 없다.
취침은 밤 1시로 연장되고 아침6시에 또 깨워 새벽공부를 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내 경고대로, 이미 지쳐버린 딸애의 공부시간이 늘어나면 그 시간에 비례해서 석차는 떨어져간다. 아마 과외가 허용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비싼 과외선생을 댈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새벽은 비가 온다. 조간신문에는 중·고생의 가출 아니면 자살기사가 또 실려 있을 것이다. 딸애는 몸에 주렁주렁 짐을 매달고도 폐품보따리 하나를 더 들고는 체육시간에 사용할 배구공을 어떻게 들고가야 하느냐고 울상이다.
비는 오는데 우산은 어느 손에 들어야 하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은 또 어느몸으로 받아야 하나.
안종관 <숭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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