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문제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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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년여 출판계가 실력 행사까지 벌이며 반대 운동을 했던 외국인 저작권 보호 문제가 이젠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의 예상과는 달리 세계 저작권 협약 (UCC) 가입이 87년9월로 앞당겨졌고, 미국 출판사의 저작물 복제는 10년 전까지 소급 보호하며, 저작권 보호 기간을 UCC보다 무려 2배나 늘어난 사후 50년으로 연장되었다.
저작권은 내국인이나 외국인을 막론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같이 선진 기술과 문화를 수입·수용해야 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외국인 저작권 보호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반 상품의 경우는 수출입을 할 때 관세를 물릴 수도 있고, 또 특정 상품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보이코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작권에 관한한 그 사용을 일방적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대하는 매스 미디어는 물론 각종 예술 작품 등은 모두 저작권을 가진 지식 산업 상품들이다.
따라서 현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문화 상품의 이용자이며 동시에 저작권의 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같은 문화·기술 정보의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이용 없이는 한 개인이 기업, 나아가서는 국가 사회의 발전을 기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간의 저작권 문제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며 잃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긍정적 측면에서 볼 때 외국의 저작권을 보호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국제 사회적 지위와 신뢰가 한 단계 높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연 3백50억 달러 어치의 상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해적 출판국」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국민적 긍지가 용납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그동안 과다 경쟁 아니면 무책임한 저질 번역의 남발로 혼란을 겪었던 국내 출판 질서를 바로 잡아 출판 문화의 향상을 가져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수적으로는 국내의 저작 활동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앞에 열거한 긍정적 측면 못지 않게 부정적인 면도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우선 로열티 지불에서 오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벅차다. 84년 출판계 통계로는 우리가 지불해야할 로열티는 최소한 번역 부문에서 2백억원, 복제 부문에서 1백억원, 번역·복제권을 얻지 못해 생기는 외서 수입 증가에 따르는 비용 3백억원 등 최소한 6백억원에서 9백억원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추정과 함께 책값도 25∼30%상승하게 된다는 전망이다.
특히 대미 의존도가 높은 리프린트 (복제)의 경우는 의학·자연계 교재의 80∼9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인데 교재의 전기 공급은 물론 책값의 상승으로 인해 대학 교육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것이다.
국내 출판계에 미칠 혼란과 위축도 간과할 수 없다. 가뜩이나 영세한 출판 시장에 외국의 문화 자본이 음성적으로 유입되어 외국 저작물의 출판권을 독점하고 국내 중소 출판사와 경쟁을 벌이게 되면 앞으로 우리 출판계는 도견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일본의 경우처럼 여러 출판사가 가입한 「저작권 거래 센터」 등을 두어 외국 출판사와의 계약을 일원화, 로열티를 조정하는 방법 등이 현명할 것이다.
이런 기구를 만들면 국내 출판사간의 로열티를 둘러싼 과당 경쟁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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