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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상 최악 북한 수해를 보는 착잡한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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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북부 지역의 수해(水害) 피해가 극심한 모양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 사이에 두만강 유역을 휩쓸고 간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리면서 함경북도 북부 일대가 해방 후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138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실종됐으며 주택 약 3만 채가 파손됐다는 게 북한 측 집계다. 현장을 실사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긴급지원이 필요한 이재민만 14만 명이고, 60만 명이 식수와 보건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수마(水魔)가 남긴 참상을 추석 연휴 기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국내 시청자들의 심경은 착잡했을 것이다. 북한 주민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북한 지도자를 생각하면 분노가 솟구치지 않았을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수해 주민들이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던 바로 그때 5차 핵실험 단추를 눌렀다. 함경북도 북쪽에서는 물난리 때문에 아우성인데 남쪽에서는 핵 불꽃놀이를 벌인 셈이다. 인민을 위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피해 주민들의 상처부터 보살폈어야 한다. 핵실험 후 열흘이 지났지만 그가 수해 현장을 찾았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그러니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을 돕고 싶어도 선뜻 돕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적 지원만큼은 해야 한다고 평소 주장해온 단체들조차 대북지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내 59개 민간단체들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지난 9일 대북 수해복구 지원을 결정했지만 그 직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면서 사업 추진이 전면 중단됐다. 물론 정부가 승인을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과 정권의 분리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원칙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 수재민 14만 명에게 긴급히 먹을 것을 나눠주고, 국제적십자연맹(IFRC)이 생필품 긴급지원에 나선 것도 이 원칙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의 소행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북한 주민의 고통을 헤아려 당장 필요한 구호품 정도는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