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위직 자녀의 병역면제용 국적포기 걱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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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병역의무자의 국적 포기 현상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병역의무를 가진 대상자가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의무가 해제된 인원이 4220명이었다. 이를 1년 기간으로 환산하면 8000명가량이다. 2013년의 3075명과 2014년 4386명의 두 배다. 지난해 한 해 동안의 2706명과 비교하면 3배다.

병역의무자의 국적 포기는 한국 국적자가 외국으로 이주해 그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했거나 외국에서 출생해 복수국적을 보유했을 경우 만 18세가 되는 해에 발생한다. 이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의무도 동시에 없어진다. 그동안 해외의 병역의무자들이 이런 방식을 병역 면탈의 수단으로 악용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으로 국가 안보가 어려운 시기에 국적 포기로 병역면제자가 갑자기 증가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전 국민이 단합해 안보를 지켜야 할 상황에서 정말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국적 포기자 가운데 상당수가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자식들’이란 점이다. 이 중에는 4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직계비속도 3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 지도층이거나 고위공직자라면 일반인보다 한발 앞서 자식들의 병역의무를 챙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따라서 멀쩡한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국적을 포기하게 만든 부모들부터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최근 들어 병역의무가 없는 국외 이주자들의 자원 입대가 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만 579명이었다.

고대 로마가 번성한 이유는 로마 시민이라면 누구나 신성한 병역의무를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그런 로마도 외국 용병에 의존하면서부터 망했다. 지금은 북한의 핵위협이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예견되는 어려운 시기다. 나라가 없어지면 너와 나의 자유와 행복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돼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기피 흐름을 다시 한번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