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인기작가 2. '린다 수 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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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고를 때 한국의 부모들이 유독 점수를 후하게 주는 상이 있다. 뉴베리상과 칼데콧상이다. 미국 도서관 협회가 미국에서 그 해에 발행된 그림책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되는 책을 문학 부문(뉴베리상)과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칼데콧상)으로 나눠 주는 상이다. 지난해 1월 그 유명한 뉴베리상을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린다 수 박(사진)이 받아 화제가 됐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린다 수 박이 한국인이라는 '핏줄 의식'도 통했겠지만, 수상작품이 한국의 도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더 눈길을 끌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가 과연 한국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소화해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소설은 '사금파리 한 조각'(서울문화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이 작품을 놓고 한 어린이문학 평론가는 "공부하는 자세에 놀랐다. 공부하지 않는 작가들에게는 상당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부모에게서 들은 옛 이야기에 문헌을 뒤져 찾은 자료를 보태 훌륭한 소설을 써냈기 때문이다. 책에는 피말리는 도자기 제작 과정, 견습생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뒤이어 나온 '연싸움''널뛰는 아가씨'(서울문화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싸움'에는 기섭.영섭 형제가 정성스레 연을 만들고 날리는 과정이 세밀화 그리듯 그려져 있고, '널뛰는 아가씨'에는 바깥 세상이 궁금하기만한 17세기 양반댁 규수 옥화의 심리가 잘 표현돼 있다. 린다 수 박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는 대가족제.윷놀이.연싸움 등 한국 문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면 책이 훌륭하다는 감탄이 나오는 한편으로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문화를 복원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윷놀이 이야기가 나오면 먼저 '윷가락을 던져서 나오는 점수대로 말판 위의 말을 움직이는 재미있는 놀이'라고 설명부터 하고 본이야기로 들어간다. 외국인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친절한 묘사이지만, 이야기의 빠른 진행을 기다리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갑갑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한국인 작가가 한국 이야기를 다루되, 미국 독자를 염두에 둔 린다 수 박의 책이 결코 우리의 '책'이 될 수는 없을 터. 그러나 자료에 충실한 성실성은 물론, 우리 책의 저작권 수출을 위해서 외국 독자에게 호소력 있는 글쓰기가 좋은 교본이 될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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