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의 「어머니」 황온순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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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수많은 고아들의 어머니로서 평생을「보금자리 만들어주기」에 바쳐온 황온순 여사(83) . 『요즘은 오라는 델 다 갈 수가 없는 게 서운할 뿐』 이라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해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의 한국보육원과 그 자신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휘경여중· 고 강당을 새로 지은이래「앓을 새도 없이 바삐 살아온」그는 평생 처음으로 2개월 반 동안 병석을 지키고 나서는 무척 힘이 부친다는 것.
그러나 보육원과 관계된 일만은 여느 때처럼 일일이 손수 하려고 애쓴다. 언제나 호주머니에다 휴지와 사탕을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할머니』 『할머니』 하고 따르는 어린이들을 코 씻어주고 사탕도 나눠주며 티없이 자라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게 더 없는 즐거움인 듯.
현재 보육원에서 자라는 44명의 어린이와 4천여 명의 휘경여중·고생들 말고도 그의 마음과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만18세가 넘어 보육원을 떠난 3천여 명의 젊은이들도 결혼·취직 등의 문제로 종종 그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남 같지 않은 여건으로 배우자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쓰는 「다 자란 자녀들」이 그를 마음 아프게 하지만 대견하고 흐뭇한 일도 적지 않다고 자랑. 『이 보육원을 새로 지을 때 그 아이들이 각자 성의껏 모아온 돈만 해도4천만 원.』 이라며 자신의 교육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한다.
해마다 어버이날과 그의 생일이 되면 수백 명의 장성한「자식」들이 부인· 남편· 자녀들을 데리고 보육원을 찾아올 때는 새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지 많은 나무」니 만큼 걱정도 끊일 새가 없다.
특히 KBS-TV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래 『혹시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 친부모를 찾아달라』며 줄을 잇는 고아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뿌리 찾기」에 연연하지 말고 이웃노인을 부모인양 모시라.』고 당부하지만 좀처럼 포기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와 한다.
영화『전송가』에서 소개된 것처럼 51년 전쟁고아들을 데리고 보육사업을 시작한 이래 한국보육원을 가꾸는 황 여사의 소원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남을 돕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키워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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