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북 특사 필요” 대통령 “북한엔 시간벌기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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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여야 3당 대표와 만나 북핵 등 현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 대통령,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의 안보에 관한 시각차는 컸다.

북 도발 규탄만 일치, 각론은 충돌
추 대표 “협상·제재 투트랙 필요”
대통령 “북핵 의지 꺾어야” 거부

박 대통령이 회담 모두발언에서 엄중한 안보상황을 강조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중대한 도발행위이고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을 규탄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이 공감한 대목은 여기까지였다.

현격한 의견차가 드러난 것은 박 대통령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를 의제로 꺼내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국민의당은 사드에 찬성인가, 반대인가.”

▶박지원 비대위원장=“저희 당은 반대로 정리돼 있다. 사드 반대를 불순세력으로 몰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추미애 대표=“사드는 미·중 간 지정학적 충돌이 우려되는 사안이다. 군사 사안이 아니라 치명적인 외교 사안이 될 수 있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선 사드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당선 후에는 소신을 주장하기보다 당론을 통일해 보려고 하는 과정이다.”

▶박 대통령=“찬반을 분명히 하자.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도화해 쓰겠다는 길을 택했다. 대한민국은 어떤 길이 있나. 북핵을 용인하거나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사드는 최소한의 자위권 차원이다.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뒤 박 대통령은 두 야당 대표들을 향해 “대안이 있으면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박 대통령과 추 대표는 곳곳에서 충돌에 가까운 논란을 벌였다.

추 대표는 회담에서 “안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을 분열시키는 낡은 안보는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더민주 측이 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안보상황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이게 이용하는 것으로 보입니까”라고 되물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미국·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규탄하고 대북제재를 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도 안보를 이용하는 것인가. 이 심각한 상황을 안보를 이용한다고 하시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핵에 대한 해법도 엇갈렸다. 추 대표는 “그동안 정부가 제재에 치중했으나 그것만으론 북핵을 해결할 수 없으니 재제와 협상의 투 트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금은 의지의 대결”이라며 “어떻게 하든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와 북한의 핵 개발의지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우리가 기필코 이겨야 한다”며 협상 제안을 거절했다.

추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대북 특사가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 때 박 대통령도 북한 특사로 방북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하자 박 대통령은 “지금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은 북한엔 시간 벌기만 되는 것이고, 국제 공조에도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곤 “추 대표가 제가 북한에 특사로 갔다 왔다고 했는데, 특사가 아니라 민간단체의 일원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도 “이 시점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박 대통령을 거들었다.

설명이 엇갈린 부분도 있었다. 청와대 측은 박 대통령이 추 대표를 향해 “사드 배치 때문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고 말했는데 사드 얘기가 없을 때는 왜 북한이 1, 2, 3차 핵실험을 했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더민주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추 대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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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이 끝난 뒤 이 대표와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사드 배치 등에 대한 ‘합의사항 발표’를 제안했다. 하지만 추 대표와 박 비대위원장은 “강요된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회담 후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발언을 주의 깊게 경청했고 진정성 있게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영수회담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안보교육 강의에 가까웠다”고 혹평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 입장에선 추 대표가 오늘 아주 잘했다”고 말했다.

김성탁·이지상·안효성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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