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벽화 지워 말썽|"의식화 그림"…당국서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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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신촌 대학가의 3층건물 외벽에 미술대학생들이 그린 도시벽화(4점)의 내용이「자극적이고 의식화됐다」는 당국의 판단으로 모두 강제철거돼 제2의「민중미술」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건물관리인등을 통해 문제의 그림을 지워버리도록 종용하다 학생들이 듣지않자 9일하오 구청·동직원 50여명을 동원해 강제로 덧칠해 지우기에 나서 이에 항의하는 대학생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문제의 벽화가 그려진 곳은 신촌역 광장주변 재개발지역인 서울 대현동121의10 3층 벽돌건물.
학생들은 건물외벽 30평을 6개부분으로 나눠 6점의 벽화를 그릴 계획으로 그중 4점을 그렸다가 1점은 주민들의 좋지않다는 평에 따라 학생들이 다시 그리려고 지웠고 나머지 3점은 당국이 9일 밤사이 모두 지웠다.
이에대해 학생들은『벽화가 완성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예술성에 관한 심의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워버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일』이라고 불평했다.
학생들은 또『건강하게 일하는 사람들, 희망찬 미래를 향한 어울림등을 표현했을 뿐이며 의식화 그림이란 당치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측은 이 벽화가 색조가 너무 어둡고 망치를 치켜든 모습등 자극적인 부분이 있으며「저질」이라는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광고물등 관리법을 근거로 벽화를 지웠다고 밝혔다.
강제철거전에 경찰은 건물관리인 이동엽씨(40·추상화가)와 이건물 1층에 세든 동강인쇄(주)측에 벽화를 철거토록 종용, 이날 하오1시쯤 학생들이 그린 벽화의 일부가 인쇄소측이 동원한 인부들에 의해 강제로 지워지기도 했다.
문제된 그림을 그린 학생들은 홍익대미술대 김환영군(22·서양화과4년), 남규선양(22·여·〃)등 6명.
학생들은 우중충한 재개발지역의 환경미화를 위해 힘있고 발랄한 그림을 그렸으며 외부지원없이 용돈을 아껴 모은 25만원으로 페인트등 재료값을 마련했고 건물관리인이자 대학선배인 이씨에게「그림을 그려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림의 내용은「통일의 기쁨」이 주제. 짙은 하늘색을 바탕으로 3층엔「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2층엔「백두산 천지와 젊은이들의 환호」, 1층엔「꽃파는 아주머니」등을 그려넣었다.
한편 문공부 문예담당 최진용사무관은『벽화를 그리는 것 자체는 환영하지만 내용중 주먹을 불끈 쥐고 내지르려는 장면, 망치를 치켜든 모습등은 다분히 도전적이고 웃옷을 벗고 뛰는 모습등 시위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고 밝히고『문제되는 부분에 대한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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