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금배추’는 억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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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유난히 무덥고 긴 여름이 지나갔으나, 유례없는 폭염과 예상하기 어려운 국지성 호우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요즘 ‘금(金)배추’, ‘배추가격 3배 폭등’ 등의 기사가 TV와 신문, 인터넷을 통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우선 ‘배추가격이 왜 올랐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되는 작물이다. 여름에는 고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고랭지 지역에서 이른바 ‘고랭지배추’가 생산된다. 고랭지배추는 비탈진 경사면, 충분하지 않은 수원(水原) 등 재배환경이 까다롭고 가격도 비싸다. 기온, 강수량 등 기상여건에 따라 생산량은 급변한다.

올해 7월과 8월은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하면서 강원도 강릉, 평창 등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평균기온도 30℃를 넘나들었다. 8월 하순에는 집중호우가 내리는 등 기상에 따른 작황 악화로 고랭지배추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20% 이상 감소했다. 생산량이 급감하니 생산량 변화에 민감한 배추가격은 급등하게 된다.

두 번째로 ‘배추가 실질적으로 가계지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농산물은 매일 소비되는 특성 때문에 조금만 가격이 올라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충격이 매우 크다. 가격 상승에 심리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연간 배추 소비량은 1인당 평균 52kg, 약 15포기이다. 그런데 소비량 중 60% 이상은 가격이 저렴한 가을 배추가 차지한다. 1인당 연간 배추 소비비용은 4만5000원 정도다. 적게는 커피 몇 잔, 많아도 한두 달 통신료보다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배추는 전체 소비자물가 중 겨우 0.17%를 차지한다. 담배(0.29%)나 소주(0.46%)보다도 훨씬 낮다. 고랭지배추의 일시적인 가격 상승이 ‘서민물가 비상 사태’라 할 정도인지 객관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식품 소비패턴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간 가격변동이 거의 없는 가공김치 소비가 늘고 있고 다양한 김치류, 샐러드용 채소, 퓨전 가공식품 소비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두 가지 품목이 장바구니 물가에 결정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김치 없는 밥상’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리 국민에게 배추가 가진 존재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폭등의 주범을 배추로 몰아가는 것은 배추로서는 지나치게 억울한 노릇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 땀흘려 배추를 키워낸 생산자들이 마치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눈총을 받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알파고도 농사는 못 짓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알파고도 예측하기 어려운 수만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 농사고 농업이다. ‘금(金)배추’ 논란이 단순한 일회성 비판을 넘어 우리 농산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정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노 재 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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