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마다 이슬|가능성 엿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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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드라머의 가장 큰 속성인「허구성」은 드라머로 하여금 우리 삶 속에서「일어날수도 있는」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담을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용인기능이다.
따라서 허구성을 창조적으로 활용할수 있다면 드라머는 리얼리티의 적절한 견제하에 얼마든지 참신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낼수 있다. 이같은 점에서 볼때 국내 TV드라머의 통속성시비는 대부분 남녀관계의 애증에 초점을 맞춰온 소재선택의 단조로웅(KBS의『이별 그리고 사랑』『그대의 초상』, MBC의『첫사랑』등)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점에서 MBC-TV가 5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새 주말연속극『풀잎마다이슬』은 새로운 소재와 참신한 기획으로 출발, TV드라머의 영역을 넓혀줄수있는 가능성을 엿보여 주었다.
『풀잎…』은 미술에 천부적 소질이 있는「한이슬」이라는 10세소녀가 어느날 미술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얽혀드는「출생의 비밀」이 도입부. 다소 순정만화같은 느낌도 들지만 드라머의 허구성을 최대한 살린 극적 아이디어라 할수있다.
평화롭던 이슬의 가정에 나타난 낯선 여인(친이모), 이슬의 죽은 친엄마-화가백수희, 백수희의 은사 양교수, 백수희의 죽음을 믿지 않는 청년미술학도, 이슬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부모, 드라머의 열쇠를 쥔듯한 심목사등이 이루는 팽팽한 극적역학관계는 미스터리 수법을 가미한 절제된 화면과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서정적 대사에 힘입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드라머의 구심점으로 내세움으로써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하려는 주말극다운 발상과 컴퓨터 그래픽스를 이용한 영롱한 타이틀백 디자인도 뛰어났고 1회와 2회 끝부분에서 양모와 양부가 각각 이슬을 안고「은하수에서 떨어진 수박만한 물방울」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도 깔끔했다.
다만 아무리 드라머라고는 하나 이슬이 그린 그림이 화초·부채까지 친엄마의 그림과 똑같았다는점, 이슬을 예술적 자질의 유전학적「연구자료」로 삼는 양교수의 행위는 지나친 감이없지 않았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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