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패는 사람에 달렸다"|이병철 삼성회장, 일경 비지니스지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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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병철 삼성회장은 최근 일본의 유력 경제전문지 일경비즈니스와 특별인터뷰를 가졌다. 이 회장은 이 회견에서 삼성그룹의 경영방침과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히고 리더십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일에 일생을 바쳐왔다고 회고했다.
일경비즈니스 7월7일자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편집자주】
-삼성처럼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확장하다 보면 중심분야에 집중하기 어려울 텐데 취사선택 요령은.
『방식만 다를 뿐 과거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것이겠지만 지금부터는 점차 세계정세와 그 나라 정세에 따라 기업규모를 축소시키기도 하고, 기업을 팔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합병시키기도 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삼성그룹은 현재 반도체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운 장래에 자동차에도 진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미국은 디자인 면에서, 일본은 품질 면에서 우수하지만 한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각각의 특징을 고려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국제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자금조달도 큰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대해 과당경쟁을 우려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느 시대에서 든 기업은 경쟁하게 마련이다. 잘 경영하는 사람은 이기고 잘못되면 낙오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께서는 「기업은 사람」이라는 철학을 갖고 계시다는데.
『철저하게 인간을 만드는 것이 본인의 목표다. 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금. 기술·경영능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중에 인간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경영의 성패는 인간의 의욕과 능력·노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시는지.
『사장이다. 부·과장도 없어서는 안되지만 진실로 리더십 있는 사장은 수 만 명에 한사람밖에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혈연관계로 연결돼있는 사회인데도 삼성은 회장비서실을 통해 일찍부터 폭넓게 인재를 모집해온 것으로 알고있는데.
『경영자 개개인의 판단력을 높이는 동시에 판단력의 조직화가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기업역사가 짧고 질량 면에서도 전문경영자가 부족하다. 그룹 각 사가 전문분야 별로 스태프조직을 갖지만 그룹차원에서도 비서실을 두어 젊고 유능한 인재를 모아 전문적인 지원과 조언을 제공하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회장의 인사는 적재적소·신상필벌·업적본위로 해왔는데 앞으로 리스크가 많은 사업이 늘 것으로 보아 두 세 번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 식의 인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는 연공서열보다도 능력과 업적을 중시, 엄격히 대우에 반영해왔다. 그러나 업적하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앞으로 유망한 회사도 있다. 적자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문제다』
-일본기업은 자본과 경영의 분리로 사원의 공유재산처럼 돼있다. 한국은 혈연형 사회구조 때문에 일본과는 그 경우가 다른데 삼성그룹은 장래 이 회장의 가족회사로 계속될 것인지.
『아니다. 우선 나는 회사주식의 10%도 갖고있지 않다. 정부의 권유로 증자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경제에 있어 재벌의 역할은 매우 컸지만 앞으로는 그 역할이 점점 달라져야한다고 보는데.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50개 그룹을 합해도 일본 미쓰비시 그룹보다 매출액이 적다. 반면 이들 50대재벌이 세금 전체의 50%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집단은 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될 단계다. 기업은 무엇보다도 이익을 올려 그 이익에서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일본을 포함,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미국시장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만 5백억 달러에 이르는 등 일본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아시아 신흥공업국들과 중공대륙을 포함해 새로운 경쟁과 협조의 경제권이 탄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일본이 우등생이 되고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 등이 모든 의미에서 일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에 기회가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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