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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열기뿜는 일본 총선유세 현장|재즈곡에 후보선전CM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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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월23일 상오11시. 「나카소네」수상이 야마나시현 고후(갑부)시 중심부의 한 주차장에 세워진 통운회사의 컨테이너 차량에 올라섰다.
「나카소네」가 번쩍 오른손을 들자 연설장에 몰린 5백여명의 유권자들이 일제히 손에 쥔 일장기를 흔들어 댔다. 그가 선거유세차 나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일장기가 유권자들에게 분배되었다.
자민당 선거운동원들이 일장기를 높이 들어 환성을 올릴때마다 국가의 권위와 민족의 특이성을 강조해온 「나카소네」수상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일장기가 다시 물결쳤다.
당총재로서 집권 자민당의 선거유세를 이끌어가고 있는「나카소네」수상은 21일 오키나와유세에서 『일장기를 게양하고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제창하는데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혀 복고조 교과서를 둘러싸고 대결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회당·공산당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그는 오는 6일 중·참의원 동시선거를 앞두고 일본이 어느 공식석상에서나 일장기도 달고 기미가요도 부르며 영광을 찾는 국가·국민이 될 것을 기대하는 자세를 분명히 했다.
정수 5백12명인 중의원선거에는 전국 1백30개 선거구에 8백38명이 입후보, 1.64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후보자 총수 및 경쟁률은 전후 최저인 지난 80년이후 두번째로 낮다. 이는 군소정당의 많은 후보들이 참의원선거로 몰려 중의원선거는 소수격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참의원의 경우 비례대표구(개선 50개 의석)는 27개 정당에 2백43명, 선거구(개선 76개 의석)에는 2백63명등 총5백6명이 입후보, 난전이 예상되고 있다. 선거구만의 경쟁률은 3.46대 1로 역대선거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동경선거구는 12.5대 1로 경쟁이 치열하다.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보수적이며 무당파의 도시계층을 표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절한 후보자를 내세웠으며 제1야당인 사회당은 오히려 대도시에서 후퇴, 도시와 농촌에 입후보자를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1야당인 사회당의「이시바시」위원장은 「나카소네」수상이 권력주의적 수법으로 국회를 강제로 해산시킨 거짓말장이라고 공박했으며 사회당의 다른 후보들은 일본열도를 「불심항모」로 내세운 「나카소네」수상이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혀를 두어개 가진 냉혈비정의 마키아벨리스트가 됐다고 비난했다.
이를 받아 「나카소네」수상의 지원유세에 나선 그의 부인「쓰타코」여사는 『「나카소네」 수상이 국회를 해산한 것은 사리사욕에서가 아니라 일본인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자민당의원들은 사회당을 가리켜 『똑바른 정책도 내놓지 못하고 헐뜯기만 하는 이같은 정책부재의 정당은 난생 처음』 이라고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같은 인신공격은 「나카소네」수상의 영어실력에까지 비화됐다. 사회당은 지난번 동경선진국 정상회담때 「나카소네」수상이 「레이건」 미대통령이나 「대처」영수상과 멋있게(?)담소하는 TV장면을 염두에 두고서 『「나카소네」의 영어라는게, 형편없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좋습니다등 겨우 유치원생 영어밖에 못한다. 「레이건」옆에 쪼르르 달려가서 사진이나 찍는 주제에…』
「나카소네」수상도 이 말에는 못참겠던지 『그 사람들이야말로 유치원생이다. 사회당이나 공산당은 요리조리 핑계만 대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뉴 사회당은 커녕 올드(켸켸묵은) 사회당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다』고 응수, 유권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사회당은 민사당·공명당등과 연합전선을 펴 자민당공천후보자의 표를 깎아내는 전략을 암중모색하고 있으나 막상 하부조직에서는 상호이익이 엇갈려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탐지한 「가네마루」 자민당간사장은 『야당의 연합이라는게 투계용의 사나운 닭과 집닭, 고양이를 함께 끌어 모은 꼴이 될 것이다. 이 난국에 연합이 무슨 이점이 있겠는가』고 바싹 야당의 약을 올렸다.
야당은 오는 6일 투표일을 앞두고 선거쟁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TV공개토론을 「나카소네」수상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토론의 의제도 「이시바시」사회당위원장은 ▲방위비 문제 ▲엔화강세 ▲세재개혁 등을 들고 나왔으나 「나카소네」수상은 재임중 한일관계의 안정』이 그의 주요업적으로 점수를 딴 분야로 평가, 이를 포함한 몇 가지를 더 추가하자고 제의했다. 사회당은 아직도 대한정책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민당과의 한판 싸움에서 약세에 몰려 있다.
그러나 집요하게 공격에 몰리면 엉뚱하게 한국국내정세를 멋대로 운운할 요인도 없지 않다.
여·야당을 불문하고 각당의 선거포스터는 한결같이 웃는 모습의 여성이나 아이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슬로건도 안정이니, 평화니 하는 차분하고 조용한 단어들만을 골랐다. 딱딱한 표정의 포스터나 격한 구호란 여야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민당의 15초자리 TV커머셜필름은 자전거를 타고 초원을 달리는 어린이를 보여주면서 『건강한 일본. 건강한 정치, 자민당』이라고 호소한다. 「자민당」만 뺀다면 후생성의 보건주간 표어나 다를 바 없다.
사회당의 것은 토끼와 거북을 등장시켜 거북이 잠자고 있는 토끼를 넘어가는 장면에 『WE TRY NO 1』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결코 투쟁적인 화면이 아니다. 오디오도 가라앉은 목소리. 더욱 재미있는 것은 선거정화위원회가 내건 선거표어다.
『포스터의 웃는 얼굴 뒤에(뭐가 숨어있나) 잘 보고 투표합시다』라는 경고성 표어다. 모두 웃는 얼굴 뿐이니 속지 말자는 것이다.
50만 가구의 선거구에 입후보자의 선전자료를 배포하는 비용만도 2천만엔(약1억1천만원)이 소요된다. 법정선거비용은 선거구 규모에 따라 다르나 중의원선거구의 경우 1천3백만∼1천9백만엔. 자민당 공천후보에게는 최고 2천만엔이 당에서 지원된다. 거리에서 선거 유세에 나선 후보에게는 「축 필승」이라고 씌어진 돈봉투가 전달되기도 한다. 지방 유지들이 보내는 이 봉투는 정당한 수입으로 잡혀진다.
군소정당의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희한한 아이디어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샌드위치 맨처럼 북이나 트럼핏을 동원하거나 지하철에서의 악수작전, 에어로빅 댄서를 동원해 사람끌기, 원숭이나 로보트 동원하기, 재즈곡에 맞추어 후보자 선전곡부르기, 모터보트 타고 아파트단지 순회하는 수상유세등 이루헤아릴 수 없다.
현재 유권자들의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니혼게이자이 (일본경제) 신문의 최근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12.6%인데 비해 자민당은 38·6%로 높다. 요미우리(독가) 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자민당지지율이 52%, 마이니치(매일) 신문에서는 40%로 나타났다.
가장 볼만한 싸움은 군마 구. 「나카소네」수상의 아들인「나카소네·히로후미」(40)씨와 「무쿠다」전수상의 동생인 「후쿠다·히로이치」(72)씨가 가문의 명예를 걸고 1위 다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현직수상과 수상의 부인 및 가족등이 유세에 총동원되어 「복-중 전쟁」(「후쿠다」-「나카소네」싸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선거에서 5백12석의 과반수인 2백57석(해산시 의석수는 2백50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실제는 안정다수인 2백71석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산시 의석수보다 20석 이상을 더 늘리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나 6일 투표율이 의외로 높아지면 전혀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만약 중의원 의석수가 2백70석이상 되면 『「나카소네」수상이 이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냥 물러설수는 없지 않느냐』하는 현수상의 임기연장론 또는 3기연임론이 다시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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