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5.000년 국난극복사 펼친다|8·15개관 앞서 유물전시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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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전시하여 자주 독립의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세워지는 독립기념관이 8월15일 개관을 앞두고 본격적인 유물전시에 들어갔다.
독립기념관에는 1백21만평의 대지 위에 기념관 건물을 비롯하여 6개동의 전시관과 원형극장, 15동의 부속건물 등 연건평 1만6천5백75평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기념관의 입구에는 민족의 비상과 통일 염원을 담은 대형 상징탑(한도룡작, 높이51.3m이 서있고 10만명의 군중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지나면 한식 맞배지붕의 거대한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 6개동의 전시관이 세워졌다(7천5백평).
전시관 뒤쪽은 추념의 장. 길이 1백5m의 대형조각(최기원작)이 펼쳐져 있다. 이 조각은 1백58명 인물들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의 역사 문화 생활을 보여준다.
독립기념관의 6개 전시관에 전시할 전시물은 9천5백85점. 그중 5천1백57점이 실물 전시자료고 4천4백28점이 복제물과 제작품이다. 독립기념관 추진위원회는 83년부터 현재까지 7천3백83종 3만1천5백23점의 자료를 수집했다.
하와이국민회에서 보낸 2천점을 비롯, 미주지역이 1만1천4백24점이었고, 일본지역이 1천5백43점, 국내수집자료가 1만6천5백73점이었다. 추진위원회는 그중 5천1백57점을 전시하기로 하고 보수, 수리작업을 했다.
복제 제작품은 실물자료의 보완적 효과를 높이고 과학적·교육적 전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광개토대왕비, 살수대첩 기록화, 3·1정신상 조형물, 사진, 도표 등 다양하다.
전시관별 전시내용을 살펴본다.

<제1전시관>
민족전통·국난 극복실이다.
첫 공간에는 광개토대왕비가 실물 크기로 복원되어 있고 탁본 유적지 사진이 전시되었다. 선사시대의 주거형태 무용총의 모형 등이 만들어져 있다. 민족전통을 알리기 위해 고조선에서부터 조선까지의 주요사실들이 패널로 제작, 전시되었다. 두번째 공간에는 국난 극복을 나타내기 위해 실물을 2.5대1로 축소한 거북선이 만들어졌고, 임진왜란·병자호란·살수대첩 등의 기록화가 제작되었다.
세번째 공간은 문학창조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한글 창제를 조형물로 보여주고 천문·인쇄·제지·도자기·사찰· 공예·음악 등 문화 전반을 유물 복제품으로 보여준다.

<제2전시관>
근대민족운동 구국계몽운동 의병의 활동 등을 보여주는 전시실이다. 첫 공간에는 개화 풍물 복합구성물을 전시, 열강의 침투와 개항당시 사회 변천을 보여준다. 개화와 척사, 갑신정변 등이 벽면 패널로 전시된다.
두번째 공간에는 13도 창의군 서울 진격 장면을 축소모형으로 재현하고 국권 수호운동·언론·출판 등의 교육활동을 표현한다.

<제3전시관>
일제침략실. 대공간에 민족의 고난을 상징하는 「고난의 한국인상」(높이6m, 직경7m)이 세워졌다.
일제의 국권 강탈, 왜경의 잔악상, 식민통치의 실상, 경제수탈, 무단탄압, 징용, 징병 등에 관한 것을 유품과 패널로 구성, 전시했다.
일제의 고문사례를 납인형으로 재현했다.

<제4전시관>
3·1운동실. 대공간에 높이6m, 직경8m의 「3·1정신상」이 서있다. 3·1운동의 추진과정, 독립선언, 만세시위 등이 중점 전시되었고 당시 궐기상황을 전광판에 나타냈다. 3·1운동도를 한국화로 제작하고 유관순열사가 갇혀 있던 서대문형무소 지하감방이 복원, 재현됐다.

<제5전시관>
독립군, 의열투쟁, 사회·학생·문화운동을 보여준다. 첫 공간에 안중근 윤봉길 김좌진 세분의 동상을 모셨다. 소공간에 이봉창의사 등의 유품이 놓이고 독립군 활약상을 집대성해 전시했다.
학생 농민 노동자의 저항사를 실물 패널로 전시.

<제6전시관>
재외동포·임시정부·광복군실이다.
대공간에 임정 요인 42명을 납인형으로 인물재현했다. 소공간에는 만주·중국·노령·일본의 동포사회를 자료로 전시. 또하나의 대공간에는 1백80도 영상과 레이저광선을 이용, 광복의 환희를 영상으로 연출한다. 광복군이 사용하던 무기를 자유중국 정부에서 이관받아 전시한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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