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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보름달에 부치는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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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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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지난 5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그룹 ‘부활’의 4대 보컬이었던 김재희씨가 히트곡 ‘사랑할수록’을 불렀다. 오는 10일 자살예방의 날을 앞두고 열린 ‘라이프 콘서트’에서다. 지인의 초대로 이날 공연에 페이스북 라이브로 참여했다. ‘이제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가락이 끝나자 김씨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인기 절정의 순간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의 고백은 뭉클했다. 한때 삶을 포기할 유혹에 빠졌던 김씨, 그는 “우리 모두 자살 예방의 마중물이 되자”고 했다. 지난 3년간 자살 예방 콘서트를 34회 열어온 그다.

이어진 일본 자살대책지원센터 시미즈 야스유키(淸水康之) 대표의 강연. 지난 10년간 자살률이 30% 감소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2009년까지 3만 명을 넘었던 일본의 연평균 자살자는 지난해 2만4000명대로 줄어들었다. 정부·지자체·민간의 협력체제 덕분이다.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목표로 지역·직업·연령별 대책을 펼쳐온 결과다. 그는 “일본은 연 1만 명대로 줄일 목표를 세웠다”며 "한국도 계층·성·지역별 자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알려진 대로 한국은 세계 최악의 자살국가다. 2014년 1만383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다. 연간 교통사고 희생자의 세 배 가까이 된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무한경쟁과 사회양극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출산율 최저, 자살률 최고라는 불명예는 이런 구조의 쌍생아일 뿐이다. 올해 자살 관련 예산이 한국 59억원, 일본 3000억원이란 단순 비교를 넘어 지금 우리가 무엇부터 치료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44.9%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최근 발표도 암울하기만 하다.

요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설치미술가 김수자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주최 측에서 찰흙을 나눠준다. 받은 흙을 동그랗게 말아 대형 원탁에 올려놓는 관객 참여형 전시다. 제목은 ‘마음의 기하학’. 이리저리 튀어나온 마음의 모서리를 깎아보자는 취지다. 동글동글 흙덩어리가 각진 세파를 누그러뜨린다. 자살은 우리 사회의 모서리다. 사회 변경으로 내몰린 이들의 비명이다. 그 모서리를 깎아 둥근 사회 속에서 함께 손을 잡는 길, 곧 다가올 한가위 보름달에 빌어본다. 8월(음력)에 뜨는 달은 ‘강강술래 뛰는 달’이기에….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