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 레이건연설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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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 미 대통령은 지난 23일 하원에서 연설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가 「오닐」 하원의장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오닐」 의장은 대통령이 평화시에 상·하 양원 중 어느 한 원에서만 연설하는 것은 미국 의회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거절 이유를 짤막하게 밝혔었다.
백악관측은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한 미국헌법 제2조 6항에 대통령은 상·하 양원 또는 한 원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레이건」 대통령의 요청이 합헌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닐」 의장은 선례를 중시하는 영미법의 전통 때문에 그런 관례가 없다고 반대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니카라과 반군에 1억달러를 원조하려는 그의 오랜 노력이 두번이나 의회표결에서 좌절되자 25일 세번째 표결을 앞두고 자기가 직접 설득하기 위해 하원연설을 요구했던 것이다.
선거의 해를 맞아 모든 하원의원들이 선거구 주민들을 의식하고 있는 때여서 백악관측은 전국에 TV중계될 하원연설이 의원들뿐 아니라 선거구민도 설득시켜 니카라과 반군원조 법안이 통과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던 듯하다.
민주당측은 「레이건」 행정부가 협상노력은 않고 반란군에 군원만 주려고 하는 것은 결국 중미에서 군사개입쪽으로 정책을 몰고 가려는게 아니냐는 주장아래 원조를 반대해왔다. 민주당측은 이렇다할 쟁점없는 이번 선거에서 니카라과 정책을 외교문제의 주요 이슈로 삼고 있다.
하원의 형세는 원조법안을 놓고 찬반표가 엇비슷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다.
하원 외교위원의 한 공화당소속 의원은 「오닐」 의장의 거부에 대해 『대통령이 의원들을 최면시킬까 두려워 하는가? 최면당할 정도라면 민주당측 반대논리 자체가 박약한 것 아닌가』라고 공박했다.
그러한 공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3권분립 원칙이 엄격히 준수되고 있는 곳에서는 하원의장의 거부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은 휴가계획까지 취소해가며 의원들을 상대로 개별설득을 벌여 결국 하원의 승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에피소드는 바로 그 원칙을 떠받들고 있는, 행정부와 의회사이의 「견제와 균형」 장치를 더욱 굳히는 또하나의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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