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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별관 청문회’ 의식했나, 법정관리 수습할 컨트롤타워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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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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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항 한진컨테이너 터미널에 입항한 한진미르호에서 지난 4일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5일 현재 압류를 우려한 한진해운 소속 선박 73척이 국내외 44개 항구 앞바다에서 떠돌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에 대한 정부의 첫 대책이 나왔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원칙은 제시됐다.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우선 해결에 나서면 채권단도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금융당국 대응책 엇박자
범정부 TF는 4일에야 꾸려져
“정치적 추궁 두려워 눈치봐선 곤란”

해당 기업과 대주주가 나설지는 미지수다.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비단 당면 문제뿐만이 아니다. 시장에선 물류의 혼란이 장기화하며 수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을 달래줄 정부 차원의 뚜렷한 중장기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질서 있는 퇴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는 지난 6월 출범한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다. 한진해운은 그 첫 수술 대상이었다. 지난 1일 3차 회의에서 추가 지원 불가 입장이 확정됐다. 정부는 이른바 ‘대마불사’를 깨며 구조조정 원칙을 지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문제는 그 이후다. 구조조정 대상 산업은 덩치도 크고 주력 산업들이다.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결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전체 경제에 미칠 혼선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실무협의체에서 상황별 ‘시나리오’를 세워 부처 간에 긴밀히 협의를 하고 있다”는 게 그간 구조조정 담당자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펼쳐지자 예상치 못한 파장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처 간 ‘엇박자’도 눈에 띄게 불거졌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양수산부가 한진해운으로부터 운항 중인 선박과 화물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넘겨받기 시작한 건 지난 3일부터였다. 법정관리(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사흘 만이었다. 그사이 한진해운 보유 선박의 3분의 2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물류대란 우려가 커졌지만 해수부는 수습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도, 필요한 자금 확보 방안도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합세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4일 꾸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실무 협의 당시 해수부는 법정관리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별 대책을 제시해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시나리오였을 뿐 실제 정보가 들어간 구체적인 ‘액션플랜’은 아니었다. 해수부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한진해운이 막판까지 ‘치킨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법정관리를 가정해 기업에 세세한 정보를 요구하기는 어려웠다”며 “법정관리행이 결정된 이후에는 기업의 각 조직이 마비되며 정보 취합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엇박자가 난 근본적인 원인은 막판까지 부처 간 이견이 조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조조정의 원칙을 강조하는 금융당국과 달리 해수부는 ‘물류대란’ 우려와 산업 기반 붕괴 우려를 들어 추가 지원에 무게를 뒀다. 역할을 분담해야 할 두 부처가 큰 방향에서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으니 뒷수습에서도 손발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산업 경쟁력 강화 장관회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회의는 실무 협의 등을 통해 결론이 난 사안을 장관들이 사실상 추인만 하는 형태다. 한진해운과 관련해 부처 수장과 정책금융 기관이 한데 모여 직접 조율에 나서던 ‘서별관회의’ 형태의 회의는 없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회의를 놓고 논란이 인 데다 8~9일 관련 국회 청문회까지 예정된 상황이 배경이 됐을 것이란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상황에서 우선 관건은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손을 보는 것”이라면서 “당국자들이 정치적 추궁을 의식해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책임과 부담을 서로 떠넘기는 일이 벌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조민근·하남현 기자 jmi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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