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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한진, 물류대란 네 탓 말고 해법 내놓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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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전 세계로 수출상품을 실어 나르던 이 회사 선박들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면서 전체 수출에까지 악영향을 줄 조짐이 보인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운항 중인 한진해운 소속 선박 141척 중 절반이 넘는 73척이 정상적으로 운항하지 못하고 있다. 항만 사용료나 하역료를 내지 못해 입·출항이나 하역을 못하고 심하면 압류까지 당하고 있어서다. 이들 배에 실린 컨테이너는 30만 개, 이 중 3만3000개가 국내 기업 물량이다. 운항 차질은 납기 지연과 제품 손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내 수출기업으로 돌아온다. 더구나 선적을 기다리는 물량이 3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물류대란이 수출대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3척에 컨테이너 30만개 묶여
볼모 된 수출업체만 발 동동
‘담보 제공, 자금 지원’ 빅딜 해야

 정부와 채권단의 안일한 대응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진해운이 국내 물동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해 큰 혼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던 채권단의 판단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지난 1일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13척을 긴급 투입해 물류대란을 수습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준비 부족으로 8일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런 수준의 상황 판단 및 관리 능력으로 구조조정을 원만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대주주인 한진그룹의 행태도 의아하다. 채권단이 지난달 초 “법정관리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정관리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막판까지 화물 선적과 운항 선박을 줄이지 않아 후유증을 키웠다. 해외 법원에 압류금지요청(stay order)을 뒤늦게 하는 바람에 선박 압류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양측은 문제 해결보다 ‘네 탓’을 하는 데 열심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채권단이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한 여파를 파악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조사했지만 한진해운이 운항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며 “물류대란 해결은 전적으로 한진해운의 몫”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은 “정부나 채권단으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은 게 없어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한다. 서로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상대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때아닌 물류난을 겪는 기업이나 국민이 보기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이다.

 이런 대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길어지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와해될 수 있다. 핵심 자산과 영업망을 현대상선으로 통합한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한진그룹의 평판과 신뢰도 치명타를 입는다.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양쪽이 한발씩 물러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한진그룹이 담보를 제공하고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 물고 늘어지다 어부에게 잡혀간 황새와 조개 처지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