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브리티시오픈 골프 스타 허석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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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 단 한 경기로 허석호(許奭鎬.30.이동수패션)씨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지난 21일(한국시간) 끝난 제132회 브리티시 오픈에 처음 출전한 許선수는 3라운드까지 선두권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4라운드에서 다소 부진해 공동 28위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세계 골프팬들의 가슴에 'S.K. HO(허석호의 영문표기명)'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엔 충분했다. 22일 일시 귀국해 쉬고 있는 許선수를 24일 이동수패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허탈함보다는 뿌듯함이 앞선다고 했다. 비록 4라운드에서 6오버파 77타로 부진했지만 최고(最古)의 메이저 대회에서 쟁쟁한 선수들과 어깨를 겨뤘던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설명이다.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를 켜자마자 전화기에 불이 나더군요. 끊고 나면 다시 벨이 울리고, 끊으면 또 오고. 10여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 대부분과 다 통화했다고 보면 돼요."

許선수는 잉글랜드 현지에서도 외신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고국에서 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점심 때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 '허석호 프로 아니냐'며 사인을 부탁하더군요. 그동안은 어디 가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행동이 좀 조심스러워지는군요."

아닌게 아니라 許선수는 그동안 국내팬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2001년 일본프로골프협회 투어에 뛰어든 뒤 가끔 고국 무대에 출전해왔기 때문이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던 許선수는 옛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석 양이 지고 있었다. 1999년 3월께였다. 許선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체육시설 관리병으로 복무하다 제대한 지 3개월째. 운동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던 許선수는 제대하자마자 필드로 달려나가 밤낮없이 클럽을 휘둘렀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환이 다시 도졌다. 입대 전에도 암 수술을 받았는데 재발한 것이었다. 당시 실내 골프연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습장을 매물로 내놨던 처지였다. 돈이 필요했다.

"레슨을 해서 연명할 것인가, 프로골퍼의 길을 갈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지요. 그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부모를 생각하는 뜻은 잘 알겠다만 훗날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훈련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레슨을 병행하기로 했지요."

오전 6시에 일어나 안양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오후 3시쯤엔 가르치는 중학생을 차에 태워 서울 마장동 연습장으로 데리고 가 레슨을 했다. 서울 송파의 집까지 데려다 주면 오후 7시가 훌쩍 넘었다. 다음엔 웨이트 훈련을 하기 위해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가까웠다.

그때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떻게 잡은 골프채인데 무릎 아픈 것이 대수냐' 싶어 꾹 참고 운동을 계속했다. 그해 4월 어렵사리 예선을 통과해 매경오픈에 출전했지만 무릎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1라운드 도중 기권했다. 경기를 포기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호 주머니에 돈은 없는데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어요. 병원을 찾았더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운동을 계속했느냐고 하더군요. 왼쪽 무릎 연골이 완전히 파열됐다는 거예요."

말을 이어가던 許선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수술하게 되면 아무리 재활훈련을 열심히 해도 정상 능력의 80% 이상이 되긴 어렵다고 하더군요."

수술을 받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다리를 들어올리기조차 어렵더니 점차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許선수는 이 때가 골프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그 해 가을 임진한 프로를 만났다. "프로가 되겠다면 앞으로 3년만 땅을 파봐라. 그때가 되면 네가 잘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2000년 3월 이동수 골프구단 창단과 함께 입단했다. 시드를 따내지 못해 입단 자격도 없었지만 구단 측에서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특별히 입단을 허락한 것이었다.

"저는 러키 보이(lucky boy)라고 생각합니다. 무릎이 아팠던 것도 전화위복이 됐고요, 이동수 구단에 입단해 마음 편하게 운동에 전념하게 된 것도 행운입니다."

수술 이후 첫 출전한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선 4등에 올랐다. 현대마스터스 대회에선 3등.

"그때 이동수 구단의 감독인 임진한 프로께서 '지금 번 돈을 너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고 하시더군요. 일본 투어에 도전해 보란 뜻이었습니다."

許선수는 2001년 일본 2부 투어에서 3승을 거두고,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선 프로 데뷔 이후 국내무대 첫승을 올렸다.

"아직은 체력이 약한 편입니다. 몸무게를 더욱 늘리는 게 급선무죠. 최종 목표는 당연히 PGA대회 우승입니다."

許선수는 "한 단계 더 발전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떴다.

정제원 기자

*** 허석호는…

◆생년월일:1973년 8월 20일

◆신체:1m76㎝,74㎏

◆프로입문:1995년 9월

◆골프입문:1986년

◆사제관계:손창열.임진한 프로

◆소속:이동수 골프구단

◆경력:2001년 포카리스웨트 오픈 우승

2002년 신한동해 오픈 우승

2002년 주켄산교 오픈 우승(일본)

◆별명:오징어

◆취미:자동차 드라이브.음악감상(세미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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