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에 갇힌 만델라의 꿈…남아공 인종차별 '현재진행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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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녹지가 마치 장벽처럼 부촌과 빈민촌을 갈라놨다. 20여년 전에 사라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정책의 잔재다. [사진=남아공 사진작가 조니 밀러(Johnny Miller) 페이스북]

불과 20여년 전까지도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허용했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반세기 걸친 공간분리정책의 잔재 남아 격차 심화
상위 10%가 부의 절반 이상, 하위10% 몫은 0.5%뿐
"불평등과 권리 박탈에 관한 건설적 대화 필요"

인종차별의 제도적 장치는 사라졌지만 생활 속 잔재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쪽은 넓적한 주택과 녹지, 도로가 잘 갖춰진 부촌이고 다른 쪽은 바둑판처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빈민촌이다. 마치 넘어서는 안 되는 장벽마냥 양쪽을 분리해주는 공간과 벽이 두 거주지를 떼어놓고 있다. 빈민촌 거주자 중에는 장벽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조니 밀러가 드론(무인항공기)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조니 밀러가 촬영한 케이프타운 주변지역은 마치 전혀 다른 두 세상을 합성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는 남아공의 빈부 격차와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 차별의 잔재들을 고발하려고 '불평등한 장면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밀러는 자신이 운영하는 '밀포토' 페이스북을 통해 "이 지역사회는 돈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분리해서 설계해놨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이 사는 모습의 차이는 땅에서는 보기 힘들 때도 있다"며 "하늘에서 촬영하는 것은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남아공의 거주지 분리 정책은 1948년 백인 정권이 들어선 이래 1994년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돼 최초의 흑인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에 이뤄졌다. 유색인종을 분리하려고 강, 숲, 장벽 등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왕래를 차단했다. 만델라 집권 이후 흑인 빈민촌 일대를 공원이나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기대한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밀러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거의 장벽들과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불평등과 권리 박탈에 대해 건설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논할 수 있는 대화를 유발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밀러의 사진들은 현실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조금의 과장이나 주관도 들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세계인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남아공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8%를 차지한다. 하위 10%가 가진 건 0.5%에 불과하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경제력 차이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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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아공의 흑인 거주지(왼쪽)와 백인 거주지. [사진=남아공 사진작가 조니 밀러(Johnny Miller)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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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백인의 거주지 사이에는 아직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둘러져 있다. [사진=남아공 사진작가 조니 밀러(Johnny Miller)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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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40㎞쯤 떨어진 흑인 집단거주지(오른쪽). 백인 거주지가 완충녹지와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사진=남아공 사진작가 조니 밀러(Johnny Miller)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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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에서 15㎞ 떨어진 계곡지대에 있는 흑인 마을과 백인 마을. [사진=남아공 사진작가 조니 밀러(Johnny Miller)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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