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잘 추출해야 최상의 커피맛 낼 수 있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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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통포럼(CCF) 참석차 방한한 세계적인 바리스타 폴 바셋이 3일 서울 한남 커피스테이션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커피의 본질은 소통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커피가 있고 대화가 시작된다. 농장에서 커피를 따는 노동자들부터 첫 데이트에 나선 젊은 남녀나 느긋한 오후를 보내는 어느 노부부까지 수많은 사람의 삶이 녹아 있다. 커피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소통하게 한다.”

서울 온 세계적 바리스타 폴 바셋

4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문화소통포럼(CCF) 2016’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폴 바셋(38)은 커피를 이렇게 정의했다. 3일 폴 바셋 한남 커피스테이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폴 바셋 매장에 후원하는 어린이 사진이 붙어 있는 것에 대해 “소통의 또 다른 모습”이라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작더라도 사회적 참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폴 바셋 시그니처 블렌드 생두의 주 생산 지역인 에티오피아의 커피농가 아이들을 후원한다. 참기쁨은 베풀 때 오지 않는가? 후원은 회사에서 하지만 20~30대 젊은 바리스타들이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소통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매장에서 받은 포상금을 자발적으로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직원이 나타나는 등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2003년 세계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서 25세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바리스타로 떠오른 그는 매일유업의 자회사 엠즈씨드와 함께 커피전문점 사업을 하고 있다. 2009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80개 매장이 있다. 바셋이 직접 커피농장을 방문해 생두를 확보하고, 매장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한다. 덕분에 폴 바셋 매장은 가장 가격대가 높은 편임에도 적지 않은 열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깊은 눈매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그가 짙은 흑갈색빛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이탈리아 남자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주 사람이다.

“호주는 스페셜티 생두가 굉장히 다양한 나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80%가 인스턴트커피를 마신다(웃음).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부터 음식·커피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완벽주의자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덕에 바리스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자신 있는 커피는.
“당연히 에스프레소다. 라테와 카푸치노는 좋은 우유가 있으면 누구나 어느 수준 이상의 맛을 낼 수 있지만 에스프레소는 숨을 곳이 없다. 작은 결함까지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마스터하기 가장 어렵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완벽하게 추출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종류의 커피도 최상의 맛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 한 잔의 완벽한 에스프레소와 좋은 우유가 만나면 더 맛있는 라테, 더 깊이 있는 카푸치노가 된다.”
한국 폴 바셋 매장에서 라테를 주문하려면 세 가지 우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일반 우유와 저지방 우유만 있었는데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은 점을 감안해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추가 옵션으로 내놨다. 덕분에 고객 만족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을 계기로 다음달부터는 우유 옵션을 추가할 예정이다.”
커피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맥주까지 파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커피가 중심인 것은 맞지만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폴 바셋 매장에서 우유아이스크림을 먹어 봤는데 매우 훌륭한 맛이었다. 맥주도 다른 음료 중 하나이며 와인 또한 그렇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폴 바셋 매장엔 아메리카노가 없다.
“대신 비슷한 룽고(Lungo)를 판매하고 있다. 사실 제조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에 물을 섞은 미국식 커피일 뿐이다. 룽고는 ‘길다’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로 에스프레소보다 두 배 긴 시간 동안 추출한다. 호주에서는 이를 ‘롱블랙’이라고 부른다. 그저 같은 종류의 커피에 다른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그에게 가장 자신 있다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부탁했다. 기계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원두를 새로 갈아 추출을 시작한다. 하지만 잔에 따라 주지 않고 흘려보낸다. 처음 접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흐르는 색이나 속도를 보며 추출방식을 정하기 위한 ‘시즈닝’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건네준 커피는 24mL로 한두 모금 분량에 불과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입안 가득 단맛과 신맛이 균형을 이루고 마신 뒤에도 쓴맛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만의 디저트 스타일 에스프레소다.

완벽한 한 잔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 본연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다. 원두의 로스팅 과정은 물론 물의 온도, 기계의 청결도 등 다양한 과정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균형 잡힌 맛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최상급 생두를 선택하겠다.”

그는 4일부터 이틀간 창덕궁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찾아 한국의 의식주를 체험할 예정이다. 6일에는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CCF에서 ‘문화 소통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연결’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가한다. 올해로 7회째인 CCF에는 바셋 외에도 미국의 재즈음악가 팀 스트롱, 뉴질랜드 마오리족 예술가 타마 와이파라, 프랑스 큐레이터 샤를 앙투안 드비브레 등이 참여한다. 한국 대표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이날 저녁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300여 명이 참가하는 ‘문화 소통의 밤’ 행사도 열린다.

앞으로의 계획은.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뒤 일본에 매장을 냈는데 커피를 맛본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이 직접 제안해 한국에 진출하게 됐다. 바리스타로 커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폴 바셋 브랜드의 대사 역할도 열심히 할 예정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커피 시음 이벤트 등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다. 한국 고객의 커피 지식 수준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매우 기쁘다. 커피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고객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임승혜 코리아중앙데일리기자 shar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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