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무대 한곳서 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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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네 번째를 맞는 지방연극제가 이곳 대구에서 열린 덕분에 모처럼 집중적으로 다양한 연극무대를 볼 기회를 가졌다. 지방 관객으로서는 좀처럼 차례가 오지 않는 구경복을 누린 셈이다. 사실 지방에 앉아서 다른 지방의 연극을 본다는 건 서울에서 지방 연극을 보거나 지방에서 서울 연극을 구경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 연극제가 서울서 열리지 않고 각 지역을 돌아가며 열리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연극제가 상금이 걸린 연극의 경연장이면서 또한 연극인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축제라고 한다면 이번 연극제는 그러한 축제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좀 미흡했던 듯하다. 물론 평소 소외되고 교류 기회가 없던 지방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를 다지고 자극을 주고받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가 없던 것도 아니다. 몇 몇 극단끼리는 앞으로 정기적인 교환공연도 하기로 했다니 듣기에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이 다소 흥겨운 기분에 들떠 모처럼의 연극구경을 즐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장기적으로 지방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서울을 제외한 지방 극단만이 참가하는 현재의 지방연극제는 모든 극단이 참가하는 대한민국연극제로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연극의 수준향상은 스포츠처럼 체급을 나눈다든가 약한 팀끼리 2부 리그를 만들어 수상기회를 확대시켜 준다고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경쟁을 겪도록 함으로써 단계적으로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연극제를 지방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지방연극이 발전하려면 하루 속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지원금도 지역별로 자체지급이 되고 시립극단 같은 것이 많이 생겨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드골」대통령시절 프랑스의 지방연극운동을 지원했던 「앙드레 말로」문화상처럼 지원은 극대화하되 간섭은 극소화한다는 자세와 문학예술도 수도나 전기처럼 국민에 대한 기본 서비스의 일종이라는 기본인식의 확립일 것이다.
지방연극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시급한 것은 유능한 연출가와 배우의 양성이라는 것이 이번 연극제를 본 필자의 느낌이다.
이것은 이번 공연작품 가운데 초연 창작극인 『삼각파도』(경남), 『얼과 빛』(인천), 『수평선』(제주), 『고향의 봄』(경기) 보다 『무녀도』(경북), 『물보라』(전북), 『모닥불 아침 이슬』(강원) 등이 공연으로서는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한편 지방적 특성이나 향토성을 살린다는 의도는 좋으나 현실성이 없는 진부한 소재에 매달리거나 (『삼각파도』『산지기네』『울어라 새여』) 안이한 연극전 기교만으로 향토의 「인물」을 다루는 것 (『고향의 봄』)은, 무대 형상력이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 경우(『수평선』)와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뭔가 가슴을 치는 절실한 문제의 제시나 문제를 파고드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방 연극계의 힘겨운 여건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정말 긴요한 것은 입에 발린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준열한 연극정신의 회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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