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의 분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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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23개 대학교수 2백 65명이 서명한 「우리의 뜻을 다시 한번 밝힌다」는 시국선언문은 오늘의 정치·경제·사회·대학에 관해 광범위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온 모순과 갈등에 대한 인식이나 그것들의 분출에서 비롯된 위기적 상황의 이해는 공감을 자아낸다.
그 모든 문제들이 민주적인 정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독한 약에 당의를 입혔다고 그 독성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 주장 가운데는 「혁신세력의 존재를 합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 대목에서 쉽게 납득이 안 되는 것은 「혁신세력」이란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는 집단을 지칭하는 것인가.
설마하니 「민중의 무장봉기」를 외치는 세력까지 말하는 것인가. 그 개념규정이 명확하여야 한다.
「민중의 무장봉기」는 구태여 그 이념적 뿌리를 깊이 캐지 않아도 「초헌법적 혁명」의 차원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리의 집요한 「민주화」노력과 「혁신세력의 존재를 합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앞뒤도, 좌우도 없이 무턱 「혁신세력」을 합법화할 수야 없지 않은가.
「반 외세」·「반 핵」운동을 민족의 생존권과 자립의 시각에서 보아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우리는 부지 하 세월로 외세에 의존하고 살수는 없다. 반 핵은 더구나 「인류의 생존」에 관한 지구적 관심사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나 견해는 이 땅, 이 한반도의 흙을 밟고 사는 사람들의 흙 묻은 목소리이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구름 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목청을 돋워 외치고, 실천해야 할 일은 자립·자강의 노력이다.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확신을 갖고 추진하기 위해 우리는 그 동안 몸부림을 치며 민주화를 부르짖어 오지 않았는가.
「외채 의존형 성장」정책도 마찬가지다. 외채를 좋아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오늘 우리 나라 경제가 이 정도라도 되어 「신흥공업국 군」(NICS)의 윗자리를 차지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외채의 공이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외채 없이도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만을 얘기할지 모르지만 경제구조와 국민의 경제관념이 다르다. 한마디로 우리와는 경제체질이 같지 않다.
우리의 외채는 중남미와는 달리 생산기반의 확충에 쓰여졌다. 먹고 마셔서 없앤 것이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악덕기업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가중의 응징을 해 마땅하다.
「성장정책의 포기」 운운은 우리가 귀가 닳도록 들어온 「자원 없는 나라」, 「인구 많은 나라」를 생각하면 난센스다. 버마처럼 웅크리고 살자는 얘기인가. 경제성장 없는 민주주의, 사회안정, 「민족생존」이 과연 가능하다는 것인가.
끝으로 「언론의 탄압」과 「대중매체를 통한 우민화 정책」을 중단하라는 교수들의 요구도 있다. 일찍이 「언론을 탄압」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도, 민족의 번영도 시작은 자유에 있고, 그 자유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다.
비록 시국선언 교수들은 전체교수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리는 제대로 분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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