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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메르켈…2인자는 치받고 고향에선 외면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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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중앙포토]

내년 하반기 독일 총선을 앞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4연임은 기정 사실로 보였다.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오래 재직 중인 정상(頂上)이면서 동시에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당연시됐다. 그러나 100만 명이 넘는 난민 유입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이젠 사면초가(四面楚歌) 형국이다.

독일 대연정의 서열 2위 인사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이 28일(현지시간) 제2 공영방송 ZDF와의 인터뷰에서 이민 상한선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마다 100만 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일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늘 말해왔다”고 말했다. 학령기 아동 이민자를 예로 들며 “30만 명이 늘어나 교사가 2만5000명이 추가로 필요하게 됐다. 이를 해마다 되풀이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가브리엘은 사회민주당(SPD)의 당수다. 이날 발언으로 난민 상한제가 내년 총선에서 사민당의 공약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독민주당(CDU)의 메르켈은 이에 반대해왔다. 총선에서 1·2당을 두고 다툴 두 당의 노선 차이가 분명해진 셈이다.

현재로서 유권자들은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부정적이다. 이날 공개된 한 여론조사에선 유권자의 3분의 2가 불만을 피력했다. 같은 조사에서 메르켈에 대한 지지도는 47%로 2013년 현 의회 출범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선 메르켈이 한 번 더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절반(50%)이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찬성한다는 비율은 42%로 지난해 11월 45%보다도 하락했다.

메르켈 총리는 일단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제1공영 ARD 인터뷰에서 “어떤 국가가 ‘우리나라에 무슬림이 안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 그건 그른 일”이라고 반격했다. 이어 “난민 담당기관에 관리 수천 명을 추가로 고용하고 난민 등록이 거부된 외국인에 대한 추방 속도를 늘리는 등 정부가 계속 난민 문제를 개선했다”며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다. 우리는 한꺼번에 수많은 일을 빠르게 결정했다”고 항변했다. 그는 "지난해 난민에 국경을 개방키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다음달 치러질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베를린 주 의회 선거가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에 대한 심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은 메르켈의 고향이다. 이곳에서도 반난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가 상승세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21%를 기록했다. CDU는 이에 비해 1%포인트만 앞설 뿐이다. 사민당(SPD)이 28%로 1위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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