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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JP사단,참모들이 와해 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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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공화당 권력의 2인자였던 금종비이 기약 없는 외유로 내불리면서 염려했던 일은 권력 내부질서의 변동이다. 그때문에 그는 주류파 12인 회의도 만들고 사무국요원들에게도 특별한 당부의 글을 남기고 갔다. 사무국은 삼영회를 결속해 JP의 당부를 충실히 따랐다. 그랬는데 보다더 중요한 주류12인회의가 틈을 만들고 끝내 주류의 전략협의기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주류의 붕괴는 공화당 권력의 지주였던 P-K라인 (박정희-김종필라인)의 위기였다. 이것은 단순히 김종필과 그 사단의 위기와 불행만은 아니었다. 박정희대통령체제에서 당은 힘의 중심에서 뒤로 밀리고 그 자리를 대통령의 막료진이 메운다는 것이며 이것은 공화당이 행정권력에 매몰되는 비민주적 질서로 내몰리는 것이기도 했다. JP직계부대의 균열은 김룡태와 길재호사이의 갈등과 경쟁심리에서 시작되었다. 길재호는 군정때는 최고회의 내무위원장을 지낸 주체중의 주체 실력자고 김종필의 맹우였다. 김룡태는 JP와 서울대사대 동문으로 민간인 주체로서 김종필의 정보부장직을 돕는 정보부장 고문이었다. 그랬는데 민정후 길재호는 국회내무위원장을 맡았고 김룡태는 원내총무를 맡아 김종필사단의 위치에서 김룡태가 앞서고 말았다. 더우기 김룡태의 별명 「두목」이 말해주듯 김룡태는 소속 의원들에게 군림하려 했고 그로인해 길의원과의 사이에 라이벌 관계를 만들고 말았다.
김-길 두의원의 라이벌 의식은 자주 충돌거리를 만들었다. 어느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공화당은 사무국요원의 급료등 경상비만도 2천만원이 드는등 부담이 무거워다. 김종필당의장때는 그런대로 잘 꾸려나갔으나 정구영당의장 때는 자금압박이 심했다. 급료를 대기위해 빚을 얻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자금은 때를 못맞춰 늦게 지급하기도 했다. 당시 당에선 국회상임위원장들에게 월20만원의 활동비 보조를 했다.
그무렵 어느때 상임위원장 활동비가 늦게 배정되었다. 예춘호총장은 상임위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는데 길재호내무위원장은 직접 만나지지 않아 마침 총장실에 온 현호봉수석부총무에게 봉투를 건네주며 길위원장에게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그랬는데 현총무가 그대로 전하지 않고 봉투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했던 모양이다. 그는 당이 상임위원장에게 공식보조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봉투속의 적잖은 돈을 보고 주류파의 정치자금이 길재호에게만 건네진다고 판단한듯 하다.
그때만 해도 그는 김룡태의 직계였다. 당장 이 사실을 김룡태에게 일러바쳤던 모양이다. 그 얼마뒤 어느 회의에서 김룡태와 길재호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겼다. 그래서 옥신각신 하던끝에 김룡태가 길재호를 향해 『길재호, 너는 주류쪽 돈도 받아 먹으면서 행동은 비주류로 하는 이중인격자』라고 윽박질렀다. 『내가 누구의 돈을 받았단 말이냐. 증거를 대라』고 대들었을 것은 뻔하다. 거의 주먹다짐이 벌어질뻔 했던 싸움 끝에 김룡태가 공식보조금을 주류계의 정치자금으로 오인한 것이 밝혀져 사과를 했지만 감정의 응어리가 풀릴리 없었다.
그 얼마뒤 길재호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남미를 돌아 미국을 거쳐오는 코스였고 그래서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종필을 만나 근황도 듣고 서울사정도 전하고 주류파 결속을 위한 지시도 받아오도록 되어있었다. 그는 이 여행에서 돌아온뒤 청와대에 들러 대통령에게 JP근황을 보고했다.
그랬으면 곧바로 주류파 12인회의를 열어 JP근황을 설명해야했다.그랬는데 길재호는 의도적으로 김룡태와 예춘호를 피했다.그는 JP의 형인 김종낙과 연결해 양순직 김택수 강계원·장태화등과 어울리면서 주류 12인의 멤버를 기피했다.
이로부터 JP진영은 내부에서소리가 났다. 대통령도 주류파내의 분열을 알게 됐다. 길재호그룹은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가 당내문제를 얘기하면서 비주류가 한사코 김종필을 반대하는 것은 김룡태와 예춘호때문이라고 했다. 『김룡태는 원내총무를 맡은후 자칭 JP사단참모장이라해서 의원들을 마치 부하 다루듯해 반발을 샀다. 예춘호는 이간질이나 해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분쟁이 생긴다. 이들 둘만 주류에서 빼버리면 비주류도 김종필을 추대해 잘해 나갈수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때인데 예춘호도 청와대에 불려들어갔다. 대통령은 이런저런 얘기끝에 예춘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예의원.나는 예의원한테는 참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공화당의원들 중에는 예의원 얼굴만 보면 밥맛이 없다는 친구들이 많아. 비주류 신주류 사람 가운데 강경주류만 없으면 JP를 받들어 갈해 나갈수 있다던데 』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구상한 길재호·김성곤의 협력체제는 그때만해도 반드시 P-K라인을 재편성 한다기 보다는 어느때 주류비주류의 협력체제를 만들고 김종필이를 택한다면 그런 협력체제위에서 당을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의 일에 대한 정구영씨의 회고로 돌아가 보자.
12월에 전당대회를 마치고 당직개편을 하는데 대통령은 전적으로 내 뜻대로 하라는 거야. 소문으로는 길재호 김성곤 두사람이 대통령의 중재로 주류 비주류의 화해에 앞장서기로 했다는것이고 그랬으면 대통령도 구상하는바가 있을텐데 .대통령은 나한테는 전연 내색도 안하고 <당의 일은 선생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선생님 의견을 따르겠읍니다>그러는 거야. 그래도 나는 중요당직의 복수안을 만들어 대통령과 상의를 하고 발표를 했어요. 양파에서 모가 나는 사람은 피하고 당내 세력을 반영하면서도 소수파인 비주류쪽을 좀 후하게 대접한다는 기준으로 된거야. 도리어 주류쪽이 불평할 인선이지.
그런데 뜻밖에도 비주류폭에서 비토야. 정책위의장 백남억, 당무위원 최치환, 그리고 구태회 이사람들이 당직을 안받겠다는 거야. 그 사람들 이유는 인선이 잘못되였다는게 아니고 당헌을 고치라는 거야.

<사무총장제를 폐지하라. 지방사무국은 그 지역 위원장이 추천케 하라>는 건데 요는 창당구상인사무국중심체제를 원내중심으로 바꾸라는 얘기지. 옳은 부분도 있지만 이걸 반대하는 다수도 있으니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지.그런데도 말을 안들어.
가만 보니까 대통령 막료들이 모두 비주류편이야. 이런 일도 있었어.
당헌개정위원회를 만들어 대충 합의가 되어가는데 갑자기 비주류쪽 대표인 박준규 김장섭 두사람이 당헌개정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는거야. 내가 <이건 안될 일이다. 정그러면 나로서도 단안을 내리겠다>고 했지.
그래 대통령도 비주류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때 중재자 입장이던 강상부군도 부르고 이후낙군한테도 내막을 알아보라고 한 모양이야.
내가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대통령은 <두사람 사표는 알아봤더니 그들이 양보를 했는데 해놓고 보니 비주류쪽 반발이 있을듯하니까 그걸 무마하려고 제스처로 한 모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와서 비주류 성의가 없다고 하는데 내가알아 봤더니 사실과 다릅니다>고 그래.
그런데 주류 비주류 경쟁이라는게 그 이면에 자금과 관련한 경쟁도 있다는 거야. 주류파의 김룡태, 비주류의 김성곤 사이에서 그런 것이 있다고 해.
그때 내 걱정은 당직파동이 아니야. 당직파동은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고 요는 당이 하나가 되어 정부의 경제운용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견제하는 일이야. 그런데 이게 제대로 안돼.
세간에 이런 저런 얘기가 떠도니까 기자들이 나한테 와서 공화당의 정치자금은 어찌하고 있느냐고 물어. 그래 내가 나는 간여치 않고 있어서 어디가 앞문이고 어디가 뒷문인지 모르고 있다 그랬지. 나는 당과 정부 몇사람에 대한 정고로써 이렇게 말한것인데 대통령은 몹시 섭섭했던 모양이야. 결국 이 문제로 또다투게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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