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고위회동 앞 둔 제한전|내무위유산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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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무위의 유산에 이은 야당의 문공·법사위거부태세, 문익환 목사 구속 등으로 정국이 갑작스레 경화된 양상이지만 이는 내주부터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고위회동에 앞선 제한전의 성격이 짙다.
야당은 당장 24일에 와서는 문공·법사위소집재론의 뜻을 보이고 대화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내무위 공전으로 거북한 상황은 넘어간 듯한 분위기다.

<재야논리 적극수용>
신민당이 문익환목사의 증인채택을 앞세워 내무위를 끝내 유산시킨 것은 열어봐야 득이 없다는 현실적 계산과 강경대응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우선 신민당은 학생·근로자의 잇단 분신 등 가파르게 움직이는「5월」의 장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야의 행동과 동기를 불가피하게 「논죄」하게될 내무외의 토론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마음내키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
따라서 신민당은 정부·여당이 인천사태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문익환목사의 증언 없는 내무위소집은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야권분열의 선전장화』를 노리는 것이라고 부응논리를 세운 것이다.
물론 이같은 반대 명분 뒤에는 「순전히 당국의 조작」으로 몰아붙였던 야당 측 조사보고가 안고있는 약점의 노출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문」과 소속의원·당원들의「목격담」을 긁어모아 독자적인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막상 정부·여당이 그 내용을 6하 원칙에 입각해 추궁해오면 답변이 궁할 수밖에 없고 .차라리 그럴 바에야 진위의 검증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인천사태의 시말을 남겨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더우기 인천사태에서 처음 나타난 후 광주의 5·18행사장에서는 당총재의 기념사조차 낭독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재야의 신민당에 대한 비판을 어떤 형태로든 수용해야 하는데 내무위에서는 그럴만한 자신이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때문에 신민당은 내무위거부와 때맞춰 부쩍 재야의 논리를 수용하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김영삼고문은 23일 기자회견을 자청,『세계의 조류는 보수와 혁신의 접근을 보이고 있다』고 했고 23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는 「문 목사에 대한 보호」를 결정.

<직선제 거부에 불만>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직선제 거부」발언이 신민당을 경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김 고문은 노 대표와의 회담에 불응할 뜻을 밝히고는『노 대표가 무슨 말을 했건 협상은 할 수 있으나 신민당으로서는 직선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김동영 총무는 『신민당이 장외를 장내화하려고 노력하는 마당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정국수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불만을 표시.
동교동계는 22일 자파 모임에서 신민당의 내각책임제 주장론자들이 민정당과 막바지협상에서 타협할 가능성을 경계해야한다는 등 잽싸게 노 대표의 발언을 당내 내각책임제 주장론자 등에 대한 견제구로 이용.

<당정간담회서 보고>
민정당 측이 내무위를 강행하지 않은 배경은 장외개헌투쟁을 국회로 끌어들여야 할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야당을 자극하지 말아야한다는 배려 때문.
민정당 측은 신민당 측의 인천사태진상조사발표의 허구성과 인천사태의 폭력성·좌경성을 반박·폭로·부각시키는데 내무위 소집이 더할 수 없는 호기라고 판단, 강행의 유혹을 많이 받았으나 결국 앞으로의 정국에 미칠 영향을 교량해 유연한 입장으로 후퇴했다는 것.
민정당 측은 최후까지 이 호재의 활용을 위해 신민당 측이 제시한 소위증언자 7명의 사전보강 요구 중 구속된 문익환 민통련의장만 제외한다면 민통련 관계자를 포함해 모두 보강하겠다고 까지 폭넓은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세기 총무와 권정달 내무위원장의 잦은 협의, 23일 아침 노태우 대표위원과 이 총무와의 협의, 노 대표와 이재형 국회의장간의 회동 등 여권내부의 연쇄협의를 통해 억지로 밀어붙일 것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 게다가 22일 원내 운영보고를 받은 고위층이 이 총무에게 재량권을 주면서 격려해 신축성 있는 대책수립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
이같은 탄력성 있는 대응에는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귀국으로 여야고위회동이 곧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기 때문이다.
노 대표가 23일 국회의장 공관으로 이재형 의장을 찾아가 요담한 것도 일련의 고위접촉을 앞둔 예비 접촉의 성격이 짙다.
민정당 측은 내주에 일단 3당대표 회동 또는 노 대표-이민우 신민당총재간의 회동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두환 대통령의 이 신민당 총재 면담에 앞서 그런 사전절차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다.
민정당으로서는 다만 내무위를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판단에서 당정간담회를 통해 내무부와 치안본부의 보고를 듣고 이를 발표함으로써 인천사태에 관한 야당발표와 허구를 홍보하는 기회로 활용.
민정당은 이번 야당의 내무위회피는 김대중씨 계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간부는 김씨 측이 3개 상위소집 합의를 한 김동영 신민당 총무에게 『앞뒤 계산도 하지 않고 열면 어떻게 하느냐』 고 강력히 비판해 김 총무의 덜미를 잡았다고 분석.
민정당 측은 신민당 측이 조사에 착수할 경우 결국 그들의 부국 조작론의 허위성이 샅샅이 드러날 상황을 인식해 한사코 회의 성립을 반대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정당 측은 이번 내무위유산과정을 통해 신민당 측이『××이 제발 저린 격』을 국민 앞에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고 판단, 호재를 최대한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대로 「재미」는 봤다고 느긋해하는 인상이 역연. <이수근·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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