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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결핵 퇴치, 과감하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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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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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율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아실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핵으로 확진돼 보건 당국이 서둘러 역학조사에 나섰다. 보름 뒤엔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또 결핵환자로 드러나 불안감이 커졌다. 병원에 가는 환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국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내 매년 3만5000명 이상 발병
결핵으로 2300여 명 목숨 잃어
통합관리와 국민적 참여 절실
결핵 후진국→모범국 거듭나야

세계적으로 보면 결핵은 흔한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0억 명이 결핵균에 감염됐으나 아직 발병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잠복결핵감염자다. 2012년 한 해 동안 발병한 결핵환자도 860만 명에 이른다. 문제는 한국이 결핵 후진국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선 매년 3만5000명 이상의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약 2300명이 목숨을 잃는다. 발생률과 사망률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다. 이러다 보니 몇몇 나라는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이나 방문객에게 입국 때 X선 촬영을 하도록 한다. 한국인이 경계 대상인 것이다. 국내 결핵 발병률이 50년 전과 비교해 5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지만 민망하고 안타깝다. 국민 건강 증진과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서라도 결핵을 반드시 퇴치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지 오래인 한국에서 후진국 병인 결핵이 이처럼 심각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 결핵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렇게 결핵을 방치하다간 국민 건강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정부가 2000년대 들어 결핵 퇴치를 위해 내놓은 대책은 다양하다. 결핵환자 대부분이 민간 병·의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2007년 ‘민간·공공협력 결핵관리사업’이 시범 시행됐다. 2010년에는 ‘결핵 조기퇴치 뉴 2020플랜’이 나왔다. 하지만 결핵예방법을 근거로 본격적인 ‘결핵관리종합계획(2013~2017)’이 나온 건 2011년이 돼서였다. 결핵 퇴치를 위한 강도 높은 대책이 마련·시행된 게 불과 5년 남짓인 것이다. 결핵 퇴치를 위한 예산도 부족하다. 국가 결핵관리 예산은 2010년 149억원에서 2011년 447억원으로 세 배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연간 360억~390억원대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또한 전국의 각 보건소에 결핵업무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이 없어 지역사회의 결핵관리 업무가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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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경각심도 필요하다. 익숙해진 위험은 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결핵의 뿌리와 위험이 여전히 깊고 크지만 우리 곁에 너무 오래 머무르다 보니 둔감하고 무관심해졌다. 2주 이상 기침이 나오면 지나가는 감기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병원에서 결핵 검사를 받아야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결핵을 퇴치하려면 정부의 면밀한 관리와 과감한 투자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사회의 무관심병도 바로잡아야 한다. 인식을 바로 갖고, 2주 이상 기침 시 적극적으로 결핵 검사를 받자.

예산과 전문인력 확충 등 국가 차원의 투자는 대폭 강화해야 한다. 다행히 보건 당국은 지난 3월 결핵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해 ‘결핵 안심국가 실행계획’을 내놨다. 잠복결핵 검진과 치료 등 선제적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어 나름대로 결핵관리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이다. 지난 7월부터 민간 병·의원과 보건소 구분 없이 결핵환자 치료비를 전액 무료화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인 것도 큰 성과다. 이달부턴 의료기관·학교·어린이집 등 집단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결핵과 잠복결핵 검진이 의무화됐다. 이렇게 제도적인 장치가 많아질수록 정부의 결핵 퇴치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내년은 2013년 시작된 ‘1기 결핵관리종합계획’이 끝나는 해다. 5년간의 성과와 아쉬운 점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향후 5년의 결핵관리 계획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제목만 바뀌는 안일한 대책이 아니라 과감한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기 위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결핵이 근절되지 못한 것은 정부와 국민, 의료계의 인식과 대책이 따로 놀았던 탓이 크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통합적 관리와 참여가 절실하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3년부터 WHO 결핵퇴치국장을 맡아온 마리오 라빌리오네 박사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언론에 “한국 정부의 결핵 퇴치 노력이 고무적이며 다른 나라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한국은 연구 역량이 뛰어나고 연구할 환자 사례도 많아 적극적인 연구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이 말을 칭찬으로 들어선 안 된다. 뒤집어보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한국은 서둘러 결핵관리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모범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결핵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과감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의료 수준이나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가.”

전병율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