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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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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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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

혼란스럽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조금은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최종 후보지로 발표된 경북 성주군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진퇴양난에 빠졌다가 제3 후보지가 논의되고 있다. 민가와 먼 한 골프장으로 이전 배치가 유력해 보이는 분위기다.

다양한 주장과 행동 보장하되
위기 땐 단합된 목소리 내야
정부 소통과 갈등관리 부족
불필요한 논란과 비용 키워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 사드 배치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미국은 주한미군과 동맹국 보호, 한국은 자위를 위해 배치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는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그 본질보다 미·중 간 역내 주도권·자존심 대결로 변질됐다. 북한 위협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한국은 미·중 틈바구니에 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처럼 국가의 명운이 달린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성주 지역민들의 반대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지식인과 전직 장관의 사드 배치 반대 주장, 중국 언론에의 기고 그리고 야당의원들의 방중(訪中) 등은 당혹스러웠고 아쉬운 일이었다. 과연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나라사랑(愛國)은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상반된 주장과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하는 자세와 지혜를 발휘할 때 애국은 달성될 수 있다고 본다. 9·11 테러 당시 미국이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하나로 뭉쳐 국가위기를 극복했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싸우더라도 울타리는 세워놓고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드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 보고 같은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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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부의 갈등관리 노력과 역량이 미흡했다. 님비(NIMBY) 및 핌피(PIMFY)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배치지역 발표 이전에 정치권과 지역주민, 지자체를 상대로 사전 협의, 공청회, 여론 수렴 등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 자충수를 둔 형국이 되었다. 그간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의 찬성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결과는 국가정책결정 구성원의 갈등관리 인식이나 역량 미흡으로 빚어진 결과로 보여지며 향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모든 권한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권력구조의 병폐가 드러났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중심제는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all or nothing)’ 제로섬 게임처럼 운영된다. 이 때문에 당선 뒤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과도한 편 가르기, 선명성 및 충성경쟁을 촉발해 국가이익보다 대통령의 의도와 당리당략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기 쉽다. 건전한 국정수행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를 중임제 또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꿔 국가수반과 총리(부통령)가 권력을 분점(分占)하도록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가정책결정 참여자(기관) 간 치열한 논쟁과 협의·조정절차가 생략되거나 유명무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방부 장관이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할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백화점에 있었다는 보도는 이러한 절차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음을 증명해 주는 사례다. 왜냐하면 정책심의·의결 참여자가 발표장소를 이탈함으로써 특정그룹(인사)에 의해 일방통행으로 결정되었고, 소외된 그룹(인사)의 반발과 냉소적 행태가 나온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향후 모든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서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직언과 문제제기를 전담하는 레드팀(red team)을 두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은 정치의 개념에 맞게 정치를 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는 사회적 희소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사드는 국가적 혹은 지역적 가치라면 배치결정은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행위는 국내외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국가안보만큼은 최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할 국가이익으로 자리매김할 때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당리당략과 이념을 떠나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 주여야 할 것이다.

로마제국은 지도층이 공동체 이익보다 사익추구에 집착하다 국가위기 시 동원을 거부하고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 게임에 열광하다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처럼 공동체의 멸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부요인보다 내부 갈등과 분열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사는 잘 말해 주고 있다. 일찍이 맹자는 전승(戰勝)의 요체는 기상이나 지형이 주는 이점보다 구성원의 인화단결(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이라고 갈파했다.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볼 가치가 있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