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눈꺼풀·안면근육 한달 넘게 떨리면 뇌혈관질환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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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경련의 원인과 증상은 다양하다. 뇌혈관질환·뇌종양 같은 심각한 질환일 수 있다. 없어지지 않고 심해지면 신경과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하다.

통증·저림만큼이나 몸에서 흔한 증상이 바로 떨림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떨림 증상이 대표적이다.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쉽게 나타나는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보통 조금 그러다 말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소해 보이는 떨림 하나가 대인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떨림 자체가 심각한 질환이고 특히 중증 질환의 전조증상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떨림은 몸의 이상 반응의 하나로, 그 자체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몸의 이상신호 떨림·경련

눈꺼풀이 떨리거나 안면근육이 움찔거려 약국을 찾았다고 가정해 보자. ‘몸에 마그네슘이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마그네슘 보충제를 받아들고 나오기 십상이다. 마그네슘이 근육 이완에 작용하는 중요한 영양소여서다. 실제로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근육에 경련이 생긴다. 하지만 떨림이 보충제 섭취로 나아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윤원태 교수는 “몸에 마그네슘이 부족한지는 간단히 혈액검사만으로 알 수 있는데, 떨림을 호소하는 환자 중 마그네슘이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그네슘 부족으로 인한 떨림은 영양결핍이 심했던 옛날 얘기”라고 했다.

과로로 인한 떨림은 한 달 안에 사라져

요즘 얼굴에 나타나는 떨림·경련은 과로·스트레스·수면부족이 대부분이다. 이로 인한 떨림은 보통 한 달 안에 없어진다. 오래가도 석 달을 넘지 않는다. 눈 밑이 톡톡 튀거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입 주위 근육이 움찔거리기도 한다. 편안히 쉬면서 긴장을 풀어주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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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떨림 증상을 겪는 환자의 MRI 사진. 표시부분은 혈관이 신경을 압박하는 부위.

문제는 한 달 이상 증상이 지속되거나 빈도가 잦아지고 떨림 부위가 번져나가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 주된 요인은 뇌혈관 문제다. 나이가 들면 뇌혈관에 조금씩 굴곡이 생기기 시작한다. 비교적 반듯하게 뻗어 있던 혈관이 구불구불해지면서 마치 등나무처럼 신경을 감고 지나가게 된다. 게다가 혈관벽에 칼슘이 쌓이면서 혈관은 보다 단단해진다. 그러면 뇌신경 중에서 뇌혈관과 가장 인접해 있는 안면신경(7번 신경)과 맞닿으면서 누르게 돼 안면에 떨림증이 생긴다.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이찬녕 교수는 “혈관 변형으로 인해 안면신경과 닿으면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듯 신경을 자극하게 된다”며 “특히 맥박과 함께 떨림이나 경련이 생기면 혈관문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경우 간단한 약물이나 보톡스 주사로 증상을 치료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나아지지 않으면 수술을 하기도 한다.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귀 뒷부분을 째고 혈관이 누르는 부위에 치료 재료를 대서 신경과 분리하는 수술이다.

뇌종양·뇌졸중 전조증상일 수도

흔하진 않지만 종양도 원인이 된다. 뇌혈관 대신 뇌종양이 안면 신경을 누르는 경우다. 안면 경련이 계속되면서 청력이나 근력이 떨어지고 감각신경에 이상이 동반되는 경우 뇌종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신경집종양도 떨림을 유발한다. 신경집종양은 말초신경에서 신경 돌기의 집을 형성하는 신경집 세포에 생기는 종양을 말하는데, 청신경에 많이 생긴다. 그러면 청신경이 부풀어 오르면서 인접해 있는 안면신경을 눌러 떨림이 생긴다.

뇌졸중도 드물게 뇌로 가는 혈액의 공급을 막아 안면 경련을 유발하기도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의 경우 사전에 눈이 떨리는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찬녕 교수는 “가능성은 작지만 안면 경련과 동시에 다른 신경계 증상이 나타나면 뇌종양이나 뇌혈관질환일 수 있어 잘 감별해야 한다”며 “중증 질환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만큼 신경과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약·건기식 오래 먹어도 떨림 생겨

안면 외에 떨림이나 경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본태성 떨림(진전)이다. 본태성은 특별한 원인 없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손이 떨리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흔히 말하는 수전증이 여기에 속한다. 증상이 심하면 고개가 떨리는 체머리 증상이나 목소리 떨림까지 생길 수 있다. 젊은 층에서도 생기지만 주로 노년에서 많이 나타나 노인성 진전이라고도 한다. 지팡이를 짚고 떨면서 고개를 흔드는 노인 흉내를 내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다. 이 증상도 긴장하거나 집중할 때 심해진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으면 약물치료를 하고 심하면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수술은 완치가 어렵고 비용 효과 측면에서 좋지 않아 잘 하진 않는다.

약물유발성 떨림이라는 것도 있다. 말 그대로 섭취한 약물이 떨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위장약이나 정신과 약물을 장기 복용했을 때 생기곤 한다. 한약이나 녹즙·칡즙·마즙·도라지즙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오랜 기간 먹어서 생길 수도 있다. 증상은 본태성 떨림과 유사하다. 손떨림이 가장 흔하고 턱떨림이나 고개떨림 증상이 올 수 있다. 윤원태 교수는 “약물유발성 떨림은 먹던 것을 끊으면 1~2주 만에 증상이 없어진다”며 “한약·위장약·건기식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떨림이 심해졌다면 이것 때문이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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