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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서 크리에이터로…빅뱅 10주년,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길을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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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두 번째 월드투어 ‘메이드(MADE)’를 떠난 빅뱅. 13개국 32개 도시에서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연간 수익이 4400만 달러(약 500억원)에 달한다. 왼쪽부터 대성ㆍ승리ㆍ지드래곤ㆍ태양ㆍ탑.

빅뱅이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일 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0주년 기념 콘서트 ‘빅뱅10 더 콘서트: 제로.투.텐’에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6만5000여 명의 ‘VIP(빅뱅 팬클럽)’들로 가득했다. 이들이 함께 뿜어내는 열기는 혹염보다 더 뜨거웠다. 2006년 8월 19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YG 패밀리 10주년 콘서트로 세상 사람들과 만난 이래 강산도 변하는 동안 자신들도 스스로 껍질을 벗고 새롭게 진화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무대이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성공적인 ‘메이드(MADE)’ 세계 공연투어를 마치고 10주년 기념 공연까지 성공리에 끝낸 빅뱅에 대해 기사를 써보지 않겠느냐는 중앙SUNDAY의 주문 앞에 머뭇거린 것도 잠시, 이제 ‘아이돌 그룹’이라 부르기엔 겸연쩍게 커버린 이 다섯 명의 엔터테이너에 대해 문화를 연구하는 대학교수로서 그동안 쓰이지 않았던 무언가를 써야한다는 부담을 벗어버리고, 빅뱅의 팬으로서 그리고 리더인 지드래곤에게서 학문적 영감을 얻었고 대학 수업시간에 그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심리적인 빚을 갚는다는 의미에서, 기꺼이 글을 써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이 글은 빅뱅이라는 한국 대중문화 속 ‘사건’에 대해 다소간 ‘학자-팬(aca-fan)’의 사심이 담긴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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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은 8월 19일 데뷔 10주년을 자축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6월 월드투어 실황과 준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빅뱅 메이드’를 개봉한 데 이어 이달 20일에는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데뷔부터 현재까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콘서트 ‘제로.투.텐’을 진행했다.

빅뱅은 2006년 8월 19일 첫 싱글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어와 일본어로 8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멤버 각자의 음악활동 및 방송·패션·영화·광고 등에서 개인적 활동을 통해 아시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상과 명예를 획득했다. 2011년엔 MTV유럽 뮤직어워드 월드 와이드 액트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가시성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그룹이 형성되기 전 연습생 시절과 그 형성 과정이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노출된 전형적인 아이돌-미디어 셀러브리티였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한국 연예산업 아이돌의 이러한 ‘전형’에서 벗어나 당당한 크리에이터의 위치에 도달했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군중을 몰고 다니는 유명인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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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이돌은 그저 특정한 범주의 연예인에 불과하지만, 동아시아를 벗어나면 아이돌이라는 연예노동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획사에 의해 다년간 트레이닝을 받아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가 동시에 가능한 퍼포머들이고 미디어 속에서 각자의 캐릭터까지 만들어진 산업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매체들은 아이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접근한다. “인형 같은 외모에 로봇 같은 칼 군무를 추는…”같은 수식어에는 이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무리 봐도 서구 개인주의의 예술적 발현태인 아티스트라고 불릴 수는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연예산업의 강자인 방송과 기획사의 요구대로 일상을 미디어에 노출해야 한다. 다 큰 성인들이 합숙을 하고, 팬들의 압력 속에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등 청소년 노동의 비판을 넘어서는 극심한 감정노동까지 수행해야 한다. 아이돌 자신들도 소비자인 팬들도 ‘좋아서’ 맺는 이 관계 속에서, 남자 아이돌에게 소비자가 기대하는 것은 퍼포먼스와 ‘오빠’다운 상냥함, 대중의 사랑을 담아내는 매력적 몸과 캐릭터이지 창의성이나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빅뱅의 일부 멤버가 퍼포머로서, 크리에이터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전한 것은 이 같은 아이돌 산업의 메커니즘 속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흙수저·금수저 논의가 뜨거운 한국사회지만 아직도 재능만 있다면, 거기에 ‘열심히’도 한다면, 이러한 아이돌의 ‘한계’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의 반열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매우 모순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존재인 것이다.

‘구김살 있는’ 아이돌의 ‘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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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빅뱅이 TV에 출연해 연습생 시절 하루 5000원의 식대로 배고픔을 견뎠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한 적이 있다. 초코파이 하나를 여러 번 나누어 먹던 시절이다. 세계투어 기간 하루 2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했고, 한 해 수익이 마룬5를 훨씬 넘어섰다고 외국 연예지가 인터뷰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아버지들이 과거 배고픔을 이기고 열심히 일해 성공했다는 산업시대의 성공신화를 다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거의 모든 곡과 그룹 곡의 일부를 작곡·작사하고 프로듀싱하는 지드래곤의 뒤를 따라다니는 ‘노력형’이라는 말이 지닌 한국 사회의 깊숙한 성공신화는, 아이돌 데뷔를 위해 어디에선가 노력 중이라는 30만 청소년들의 꿈인 동시에 좌절이기도 하다. 아이돌 3세대라고 할 수 있는 최근의 힙합 아이돌들의 ‘엘리트’성은 아이돌 또한 더 이상 ‘노오력’만으로는 힘든 단계에 도달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돌이면서 힙합이라니. 빅뱅은 어찌 보면 200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은 원형적인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시스템과 2010년대에 등장한 방탄소년단이나 블락비처럼 작곡도 하는 새로운 힙합아이돌 세대의 구김살 없는 음악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힙합 앞에 ‘구김살 없는’이라는 형용모순을 할 수밖에 없는 산업화된 대중음악 속에서 빅뱅은 적어도 ‘구김살 있었던’ 시절의 아이돌이고, 스타일화된 힙합일지언정 자신의 색깔을 만들기에 성공한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빅뱅의 특별함은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여느 아이돌처럼 시스템을 통해 ‘기획’되었고, 미디어에 노출되었으며, 다섯 명의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교차산업적인 활동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들을 그저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에는 곤란한 지점이 있다. 빅뱅의 다섯 멤버는 튀어도 너무 튀는 것이다. ‘자로잰 듯이’ 혹은 ‘칼 군무’가 안 되는, 또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다.

지드래곤의 미술계나 패션계와의 컬래버레이션이나 탑의 배우와 컬렉터로서의 능력, 아이돌 그룹에 있기 ‘아깝다’고 평가되는 태양의 가창력과 인지도가 특히 그렇다. 자신을 “신들린 랩 바스키아”이고 “환생한 다빈치”라고 하는 탑과 “GD 하면 오해 Call me GOD”, “내 통장은 당구대 공이 너무 많아”라고 하는 지드래곤은 노래 ‘쩔어’속에서 후줄그레한 체육복을 입고 화장실에서 방뇨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더 이상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없는 아이돌로서 자기이미지 깨기를 시도한 엄청난 과잉 자아와 자신감의 표출이지만, 이것이 역겹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자뻑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성적 매력 내뿜는 지드래곤은 젠더 연구 대상

한국에서 셀러브리티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지드래곤은 아마도 우선적으로 연구돼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도발적 의상으로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을 부르던 시절의 마돈나에 대해 여성학적·사회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듯, 천의 얼굴을 보여주는 미디어 셀러브리티인 지드래곤에 대한 젠더 연구 역시 가능할 것이다. 그는 여성과 남성에 동시에 섹스어필하는 독특한 양성성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을 규정하는 양성적(androgenious)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동시에 그의 글로벌 팬덤은 양성애적(bisexual)으로 반응한다. 그의 소년적인 외모는 넘치는 섹스어필을 교묘하게 감싸는 역할을 하고, 여성의 옷과 남성의 옷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패션이 가능한 ‘0도(degree zero)의 몸’은 다양한 젠더 감수성이 투사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치명적인 시선은 그의 소년성과 아이돌 이데올로기를 배반하고 수용자를 데카당한 욕망의 주체로 전환시킨다.

오빠들의 칼 군무 문화 속에 데카당스라니-. 나는 언젠가 K팝에 대해 백인의 미학에 흑인의 음악을 구사하는 혼종성을 지녔고 “술, 마약, 자유로운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서구의 그룹들과 달리 건전한 아이돌의 이미지”, 또한 일체의 불온함, 정치적 저항이 없는 ‘안전한’ 음악을 하기에 서구의 다문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친화적이라고 쓴 적이 있다. 빅뱅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들은 이러한 평가의 경계선에 놓여있다. 다소곳하지 않은 에고를 드러내기에 취향적 거부감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정치적 이견을 자극할 수 있는 몸짓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한국사회 및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오늘, 성정체성의 자유를 온몸으로 구사하고 있는 900만 팔로워를 지닌 지드래곤은 여전히 음악 속에서만 입을 열고, 그것도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만 발언한다.

이러한 태도는 시스템의 희생자라는 아이돌 이미지를 떨궈버리는 역할을 하고 소속사로부터의 자유, 자기 음악의 주체가 된 셀러브리티 이미지를 강화하지만, 스스로를 아이돌의 경계 안에 가두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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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부터 10월 30일까지는 서울 성수동 S팩토리에서 10주년 기념 전시 ‘A to Z’가 열린다. 알파벳 A부터 Z까지 멤버들이 고른 단어로 아티스트로서의 빅뱅ㆍ무대에서의 빅뱅ㆍ시대의 아이콘 빅뱅ㆍ10년간의 빅뱅의 모습을 표현했다. 빅뱅과 오랜 시간 작업을 진행해온 포토그래퍼 홍장현이 ‘히어로’를 주제로 5명의 사진조각을 모아 하나의 콜라주 작품으로 완성했다.

한국적 흥겨움에 더한 발랄함 삐딱함

정신분석학을 동원하는 초기의 뮤직비디오부터 함축적이고 강렬한 기호의 연속인 ‘판타스틱 베이비’ ‘쿠데타’ ‘배배’에 이르기까지, “집에 가지 말고 나랑 놀자”는 빅뱅의 음악이 보수적 한국 사회의 과도하게 얌전한 대중음악 속에 발랄한 “삐딱함”을 가져온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컬러와 제스츄어의 K팝스러운 화려함에 빅뱅식 과잉이 더해진 그들의 댄스음악은 항상 흥겨운 떼춤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들이 발생시키는 다채로운 흥겨움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한국적’이다. 실제 가사와 영상 속에 “다 같이 놀자” “다 꼼짝 마” 등 어린이 놀잇말이 등장하고, 시위 현장이 재연되기도 하며, 찹쌀떡·늴리리야·한복·북청사자놀이와 같은 민속적 요소들이 삽입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무대를 뛰어다니며 만들어내는 흥겨움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한국식 마당놀이의 흥과 상당히 닮았다. 또한 록의 전성시대, 가장 강렬한 서정성이 담긴 발라드들이 하드록 그룹에 의해 만들어졌었던 것처럼, 지드래곤이 작곡하고 빅뱅 멤버들의 미성이 두드러지는 발라드곡들은 아이돌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서정적인 곡이 되곤 한다.

이제 데뷔 10주년을 맞은 빅뱅은 그들이 쌓아온 10년간의 누각에서 내려와 군입대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이돌의 군입대는 미디어 셀러브리티로서의 자신들의 존재를 묻어버리고, 2년 후 망각에서 부활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기간이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군대 전후의 그룹이 대중음악계에서 동일한 위상, 동일한 모습을 되찾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기진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는 ‘메이드’ 영화 속 지디의 모습 속에서 빅뱅 최고 영광의 순간을 최대한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안간힘이 보였다. 70세가 되어서도 롤링 스톤스처럼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그의 염원이 꼭 이루어지길.

글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skhong63@snu.ac.kr
사진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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