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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인터넷뱅킹에 자리 내준 ATM…연 손실 대당 166만원 애물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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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때는 ‘첨단 금융 서비스의 총아’로 불렸다. 덕분에 ‘꿈의 은행’이 열리게 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가는 핀테크 시대엔 구조조정 대상 1순위의 애물단지 신세다. 이제 최첨단 만능 기기로 변신해서 새롭게 도약할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전국 은행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automated teller machine) 이야기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의 ‘눈물’

1966년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ATM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90년 7월.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명동지점에 처음 설치됐다. 출금만 되는 CD(현금자동지급기)만 있던 터라 입금까지 되는 ATM은 꽤 혁신적인 기기였다. 국내 생산업체가 없어 일본에서 대당 8000만원을 주고 수입해 왔다. 조흥은행은 ATM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만 운영했지만 이듬해 미국계인 씨티은행이 ATM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 선진형 금융 서비스에 깜짝 놀란 국내 은행들이 서둘러 ATM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처음엔 생소한 기계에 선뜻 돈을 맡기려는 은행 고객이 많지 않았다. 93년 전국에 설치된 ATM은 총 188대였는데 대당 하루 평균 5번의 입금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쳤다. 당시 신문 기사는 “돈이 낡아 돈을 제대로 세지 못하는 등 각종 사고가 잦은 데다 고객들이 기계에 돈을 맡기는 것이 불안해 이용을 꺼린다”고 분석했다(중앙일보 1994년 2월 25일자).

점차 고객들은 ATM 사용에 익숙해졌고 거래량도 늘어 갔다. 은행이 ATM 이용 시 각종 수수료를 깎아주는 유인책을 펼친 게 한몫했다. 외환위기 직후 각 은행은 지점을 줄이면서도 ATM은 늘렸다. 2000년 1만 대를 넘어선 은행의 ATM 설치 대수는 2002년 2만 대, 2006년 3만 대, 2010년 4만 대로 증가세를 이어 갔다. 2013년 말엔 전국 은행에 4만7937대가 운영됐다. 대당 3000만원에 육박했던 국산 ATM 가격은 1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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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ATM은 포화 상태를 넘어 과잉 공급 상황이다. 한국의 20세 이상 인구 10만 명당 자동화기기 수는 290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99.3대)의 세 배 수준이다. 이쯤 되니 ATM이 너무 많아 은행 수익을 갉아먹는 ‘오버 뱅킹(over-banking)’ 현상이 나타난다.

2013년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ATM 한 대당 연간 손실액이 166만원이다. 감가상각비와 관리용역료·임차료 등 연간 775만원이 들어가는데 수수료 수입은 609만원에 불과하다.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용이 늘고 웬만한 소액결제도 카드로 하게 되면서 현금 입출금 거래 수요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중 발생한 은행의 입출금·자금이체 거래 중 38.2%가 ATM, 40.2%가 인터넷뱅킹(모바일 포함)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인터넷뱅킹이 ATM을 추월한 이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가뜩이나 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은행은 돈 안 되는 ATM 구조조정에 나섰다. 지난해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전국 은행에서 철수시킨 ATM이 2522대에 달한다. ATM 설치 대수 1위(7월 말 기준 8868대)인 국민은행은 올 들어서만 360여 대를 없앴다.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관계자는 “임대료와 용역비·인건비가 계속 올라 고객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로는 유지가 안 된다”며 “이용률이 떨어지는 영업점 내 설치된 ATM은 줄이고 지점 바깥의 자동화코너로 재배치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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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첨단 기기로 진화 중이다. 기업은행의 홍채 인증 ATM.

하지만 찬밥 신세로 전락한 건 어디까지나 일반 ATM에 한해서다. 진화된 최첨단 ATM은 오히려 은행들이 속속 도입하는 추세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금자동입출금기가 아닌 무인은행 내지는 셀프뱅킹 기기다. 제조사인 노틸러스효성은 NBS(New Branch Solution), 이를 도입한 신한은행은 ‘디지털키오스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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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의 손바닥 정맥으로 인증하는 디지털키오스크.

신한은행이 지난해 말부터 24대를 운영 중인 디지털키오스크는 뚱뚱한 ATM처럼 생겼다. 이 기기의 가장 큰 특징은 창구에서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인 107 가지 업무를 셀프서비스화했다는 점이다. 체크카드나 보안카드, 통장 발급은 물론 신규 계좌를 트는 것까지 가능하다. 직원 연결이 필요할 땐 화상 상담을 이용하면 된다. 카드 없이 손바닥 정맥으로 거래할 수도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반 ATM과 달리 펀드·카드·예금담보대출 업무까지 서비스하기 때문에 수익 면에서 잠재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해외에도 드문 첨단 기기여서 칠레 국영은행과 프랑스 금융그룹 BPCE에서 직접 보러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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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대당 업무 처리 능력이 영업점 창구 수준에 미치진 못한다. 창구 직원의 얼굴을 보고 거래하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한 고객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아 대당 가격도 일반 ATM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확산에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는 게 노틸러스효성 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ATM도 처음엔 젊은 사람만 썼다”며 “고객의 거부감을 줄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결국 창구 직원 한 사람 몫 이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ATM 타행 송금 수수료 800원 → 1000원…은행들 잇따라 올려

은행 영업 시간이 지난 뒤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송금이나 출금을 할 때 예상보다 수수료가 비싸서 이걸 취소할까 말까 고민한 적이 한 번쯤 있지 않은지. 아마도 최근엔 이런 소비자가 부쩍 늘었을 듯하다. 각 은행이 ATM 운영으로 인한 적자를 메우겠다며 잇따라 수수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월 ATM에서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는 수수료를 10만원 초과 시 8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렸다. 한국씨티은행은 일부 예금 상품에 주던 ATM 수수료 면제 혜택을 없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5월부터 ATM으로 다른 은행에 이체할 때 수수료(영업 시간 내)를 200원 올렸고, 국민은행도 100원 인상했다. 저금리로 인한 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수수료 인상이란 방법으로 만회하려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지만 은행 측은 “ATM 운영 적자가 심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한다.

ATM 수수료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불만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금융정보업체 뱅크레이트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거래 은행이 아닌 은행 ATM으로 현금을 찾을 때 내는 수수료는 평균 4.52달러(약 5000원)로 5년 전보다 21%나 올랐다. 뉴욕 일부 지역에서는 상황에 따라 수수료가 8달러(약 8900원)까지 올라갔다. ATM 이용자가 줄면서 유지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은행 고객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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