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여행·해외주식구입 러시| 엔고로 일본에 "생활르네상스"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경=최철주특파원】

<입맛 쓴 외국 관광객>
○…엔화강세가 시작되면서 가장 예민하게 나타난 것이 일본입국 관광객의 급격한 감소와 일본인의 해외여행 증가다.
일단 일본에 발을 들여놓은 관광객도 달러對 엔임의 환율을 계산해 보고는 일본의 엄청난 물가에 놀라 체일스케줄을 단축시키며 서둘러 출국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일본의 최고급 호텔로 알려진 호텔 오오꾸라의 투숙객들도 호텔부근의 자그마한 음식점에서7백∼8백엔짜리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호텔로 돌아갈 때는 슈퍼마켓에 들러 싼 과일과 빵 등을 사서 비닐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같이 쩨쩨해진 비닐주머니 행렬은 일류호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작년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2백33만명 이었다. 그러나 엔고로 치닫기 시작한 10월이후부터 계속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4월의 입국자 수는 작년 동기보다 l7 4%나 감소했다.
일본관광의 중심지인 교오또(경도)의 경우 지금 최적의 관광시즌인데도 외국인들은 작년에 비해 25%나 줄었고 반면 해외여행알선업체들은 희희낙락이다. 지난달 해외여행에 나선 일본인은 41만4천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98%증가했다.

<전자제품 할인판매>
○…아끼바히라(추섭원)의 전기 전자 상점가가 달라지고 있다. 세계적 유명관광코스로 알려진 이 거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여전히 몰려들고 있으나 선뜻 전기제품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엔화시세가 작년 9월이래 50%가까이 올라 외국인이 아무리 면세된 제품을 구입한다 하더라도 홍콩이나 미본토에서 같은 제품을 사는 것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일본에서 전기제품을사는 사람은 「촌놈」취급을 받는다. 일본기업들이 생각다못해 면세품에 대해 20∼30%씩 가격을 할인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밖(해외)에 나가 사는 것이 더 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의 관문 나리따 공항의 출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관광객을 맞는다.
『긴급뉴스. 제품가격 일제 인하. ××나라에 있는 면세점은 현재 폐쇄중.』지금 일본에서 물건을 사기 않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살 수 없으니 출국하기 전 결단을 내리라며 구매를 충동질하고 있다.
동경신쥬꾸(신숙)에 있는 카메라 상정가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요도바시나 사꾸라야의 경우 올해 면세품의 판매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나 줄었다고 울상이다.

<북해서 우유 생산>
○…달러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원유가격도 하락을 거듭하자 일본기업들은 재빨리 유전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수지가 맞지 않아 작업을 중단한 각 산유국의 유전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싼값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앤화강세를 이용해서 해외에 있는 유망광산 매입도 서두르고 있다.
스미또모(주우)석유개발사의 움직임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2월에 영국 북해에서 전망이 좋은 석유광구를 1천만달러에 사들였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모빌사에 2억5천만달러를 지불하고 아프리카 유전을 사들인 미쓰비시(삼능)석유개발은 『90년대에 들어서면 석유수급이 또 어려워질 것이 확실하며 그때 가서 준비를 서두르면 너무 늦다. 자원이 없는 나라는 지금부터 손을 써야한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달러실물투자 확대>
○…엔고가 계속되는 한 최량의 투자선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것이 일본기업들의 고민이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달러의 실물투자. 자동차산업의 경우 올해 설비투자계획은 일본 국내보다 미국등 해외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물가가 안정되어 있고 달러기준으로 상품을 생산, 달러를 팔기 때문에 환차손을 볼 염려가 없으며 미국의 기술지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을 노리고 있다.
엔고로 수출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들이 해외로 계속 탈출함에 따라 일본경제의 공동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엔고가 되면서 미국채권에 투자를 많이 해왔던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다. 달러화 약세로 투자의 실질가치가 떨어진 때문이다. 엔고에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일본투자가들은 가격이 뛰고있는 미국주식시장으로 투자를 전환하고 있다.
엔고가 가져온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상당수의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으나 대부분 연구개발비만은 증액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오시바(동지)는 올해 연구비를 작년보다 1백억엔 늘린 2천6백억엔, 히따찌(일립)도 역시 l백억엔 늘린 1천7백50억엔을 책정했다. 『지금 연구개발비를 늘려야 호기를 만날 때 일어설 수 있다. 불황때 하지 않으면 늦는다』(지기수재 비쓰비시전기사장) 특히 히따찌제작소와 산요(삼양)전기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연예계도 일희일비>
○…엔화시세의 급등은 일본연예계까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홍행은 거의가 달러화 기준계약이기 때문에 엔화시세에 따라일본 주최측이 지불할 돈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현재 동경에서 공연중인 『코러스 라인』 은 작년에 계약된 것이라 엔화시세가 지금 수준으로만 그대로 지속된다하더라도 일본흥행사는떼돈을 벌게 되었다. 달러당 7O엔이상의 차익이 굴러온다. 그래서 요즘 흥행사들은 행여 구설수에 오를까 염려해 아예 입을 다문다.

<명목상 방위비 늘어>
○…엔화가치가 계속 상승하자 일본의 1인당 GNP도 덩달아 올라 달러표시가격으로 미국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 경제 기획청에 따르면 작년일본의 1인당 GNP는 1만1천1백90달러, 미국은 1만6천7백2달러다.
그러나 작년의 엔화환율은 달러당 평균 2백35엔. 올해의 평균환율을 1백75엔으로 잡을 경우 일본의 1인당 GNP는 1만5천34달러로 미국을 바짝 뒤쫓게 된다.
엔고파문의 또 하나는 일본방의비의 명목상 증가다. 최근의 환율로 올해 각국의 방위예산을 계산하면 ①영국 2백92억달러 ②서독 2백78억달러 ③프랑스 2백74억달러 ④일본이 2백45억달러가 된다. 숫자상으로는 일본이 열강과 맞먹는 군사대국이 된다.

<내수확대에 안간힘>
○…일본정부는 국민생활의 질을 높이는 「생활문화 르네상스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내수확대를 통해 엔고에서 오는 수출불황을 타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토끼장으로 표현되는 좁디좁은 집, 좁은 도로, 보기 흉한 전신주, 아무렇게나 설치된 광고물 등을 정비하고 목욕탕 화장실 공간을 넓히는 주택개조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