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하얀 천막 속에 원형극장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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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도 수원시 경희대 캠퍼스 내 주차장 터. 네개의 뾰족 지붕이 매혹적인 거대한 극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첨단 텐트극장(빅탑 씨어터)이다.

이곳에선 31일 개막하는 뮤지컬 ‘캐츠’ 공연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마치 흰색의 얼음 궁전을 보는 듯한 텐트극장은 외형에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극장과 리셉션장 등 두개의 텐트를 합친 면적만 1천5백평이나 된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과거의 원형극장이 고스란히 재현된 듯하다.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석이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다. 관객석은 1천7백50석으로 대극장급이다(원형으로 된 객석은 공연을 보기 위한 최적의 구조다. 영국의 국립극장 대극장인 올리비에 극장(1천2백석) 등이 이 구조를 취하고 있다).

원형 극장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무대가 손에 잡힐듯 가까워 살아있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맨 끝 줄에 앉았는데도 무대가 가깝게 느껴졌다. 객석은 계단식으로 꾸며졌는데, 계단 사이사이에서 냉난방풍이 들어온다. 텐트 외벽에 설치된 6대의 대형 냉난방기가 이를 담당한다.

원형 무대도 이채롭다. 기존의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오른 일자형 무대에 비해 다양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원형 무대 밑에는 네개의 하수구 배관을 만들어 고양이가 자유자재로 관객석을 드나들도록 했다.

방풍.방수 기능을 갖춘 첨단 텐트극장이지만 소음에는 그대로 노출되는 단점이 있다. 외부에서 냉난방기가 작동할 경우 '웅웅웅웅'하는 소리가 감지된다. 텐트극장을 도입한 설도윤 설&컴퍼니 대표는 "밖에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캐츠'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소음도 공연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 위에서는 '캐츠' 공연팀의 무대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간편한 옷차림에 허리에 두른 꼬리가 눈에 띄었다. 제작진은 "꼬리가 자꾸 몸에 감기는 불편함을 배우들이 미리 몸에 익히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한국인 임한(올드 듀터로노미 역)씨와 브래들리 체필드 호주 시드니댄스컴퍼니 수석무용수(마법사 역) 등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무대 뒤에는 다섯대의 트레일러에 분장실.의상실.주조정실 등이 들어섰다. 가히 극장 안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극장을 나오니 텐트 외벽에 물이 주르르 흐른다. 알고 보니 이날은 텐트를 청소하는 날. 호주에서 날아온 텐트 설치기술자들 네명이 첨탑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물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에 공해가 심해 며칠에 한번씩 청소를 해야한단다.

이 첨단 텐트극장은 호주에서 제작된 것이다. 호주에서는 지난 3년간 '캐츠' 전용 텐트극장이 지역 곳곳을 누볐다. 제작진은 이 텐트를 대여해 왔다. 텐트를 세우는데 3일, 철거하는 데 1일 정도가 소요되지만 한국에서는 한달여가 걸렸다. 처음 조립할 때는 시일이 좀 걸린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8명의 호주 스태프와 50명의 한국인 스태프가 텐트 설치에 나섰다. 이사짐은 40t짜리 대형 콘테이너로 40대 분량이다. 캠핑갈 때 텐트치는 일에 비교하면 과히 '대역사(大役事)'다.

어릴 적 텐트에 들어설 때 야릇했던 느낌을 찾고 싶은 어른이라면, 일자형 무대와 객석이 불만인 공연애호가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꿈의 장소다. '캐츠' 텐트극장은 수원에 이어 부산(8월 23일).광주(9월 27일).대구(10월 11일) 로 자리를 옮겨 관객을 찾아간다. 02-501-7888.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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