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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10대 소년소녀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며칠동안만 보아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성적에 불안을 느낀 몇몇 중·고 남녀 학생들이 자살했다. 어느 여중생은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실로 「무서운 아이들」이다.
사춘기 청소년의 자살이 많은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30년 사이에 10대 자살증가율이 3배나 늘어나 84년도에는 무려 6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년에 3만명에 가까운 자살자가 나오는 자살율 세계 5위의 일본에서도 10대 자살이 3%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증가추세다. 지난 4월 만해도 83명의 10대가 자살했다.
미국 청소년의 자살은 부모의 별거 또는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나 일에 쫓기는 부모부터 소외된 고독과 스트레스 등 다분히 가정적 동기가 많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입시의 실패나 이성관계, 신병, 친구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등 개인적인 동기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난달 한 소녀가수의 자살에서 비롯된 10대들의 잇단 「추종자살」처럼 이해하기 힘든 동기도 많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우리 10대들의 자살동기는 한결같이 학업성적에 대한 불안과 입학시험에 대한 공포라는데 특징과 문제가 있다.
84년도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에 나타난 우리나라 청소년의 고민을 보면 55%가 학업에 관한 것이다.
가족구성의 분화에 따른 핵가족화, 부부중심의 사고와 생활, 「공부」만으로 자녀의 전인격을 평가하려는 가치관, 그런 속에서 소년소녀들은 소외감과 좌절감에 빠지고 만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혹심한 입시경쟁과 학업부담은 목을 죄는 것 같은 강박감을 줄 것이다.
부모와 교사의 채찍질은 하루 한시간의 여유도 없이 가해져 의지가 굳지 못한 10대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자포자기나 자살의 위험으로 치닫게 된다.
아이들의 정신건강 관리는 1차적으로 가족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따뜻한 관심을 갖고 자녀들의 심리상태를 살피며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무마시키도록 노력해야한다.
학업성적이 좋은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전적으로 학업성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부모들이 오히려 더 잘 아는 일이다. 자녀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우수한 특기를 살려 이를 장려하고 고취하는 것이 부모들의 임무요 자녀들의 바람직한 활로를 열어주는 길이 될 것이다.
획일적이고 성적위주의 교육현실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은 이미 많은 전문가에 의해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 세상을 경쟁과 풍파 없이 살아가기란 어렵다. 부모들은 사회나 제도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주위를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심신 단련의 가정교육도 절실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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