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와 못가진 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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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며칠전 일이다. 밤늦게 귀가하던중 한 길옆에 어떤 남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대로 지나치기가 무엇해서 옆에 차를 세우고 그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술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그를 일으켜 세우면서 밤늦게 이런 곳에 누워있으면 위험하니 집으로 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몽롱한 눈으로 자동차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대뜸 『야! 자가용이면 다야, 필요없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손을 홱 뿌리쳤다. 참으로 어이없고 멋적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오면서 나는 많은것을 생각했다.
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한국사회가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는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결과에 대해서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대가란 국민적 일체감의 상실, 즉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사회적 거리다.
일부 신흥부자는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해 「고급」에 물린 과시적 소비로 신분향상에 급급해 한다. 또 정부는 올림픽이니 「3저 시대」니 해서 거창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아직 전체국민의 약 10%를 차지하는 절대 빈곤층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 바쁘다. 얼마전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절규하면서 끝내는 생존 경쟁에서 탈락해야만했던 어느 여고생의 죽음, 10만원도 채 못되는 월급에 항의하면서 자기몸을 불태운 어느 젊은 노동자의 죽음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물론 빨리 앞서가고 잘사는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것은 한나라 안에 서로 불신하고 갈등하는 「두」국민이 존재하지 않도록 국민적 일체감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는 못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 삶에 희망을 주고, 가진 자는 못가진 자 앞에 겸손함으로써 우리모두가 가난하되 슬프지 않고 억울하지 않은 사회가 창출되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심윤종<성균관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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