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영국 명문대 갈 차남 3800만원 학비 고민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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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왼쪽)가 지난 해 11월 런던에서 레닌의 공산정권 수립 98주년을 맞아 영국 공산당 당원에게 강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중앙포토, 가디언 캡처]

태영호(55)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망명은 ‘이민형 탈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부인과 두 아들 동반 ‘이민형 탈북’
차남 올A+ 수재, 컴퓨터 전공 예정
게임ID는‘North Korea is Best Korea’
태 공사, 평소 경제적 어려움 토로
“침실 2개 좁은 부엌 아파트 사는데
평양친구들 수영장 저택 사는줄 알아”

특히 태 공사의 두 아들이 이런 결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정부 당국자가 18일 밝혔다. 각 26세, 19세인 태 공사의 두 아들은 학업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장남은 해머스미스 병원에서 공중보건 관련 경제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언론은 태 공사의 장남이 “평양을 세계적 도시로 만들기 위해 장애인 주차공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요지의 논문을 썼다고 전했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차남은 고교 시절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으며 수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올가을 영국의 수능인 레벨A 결과가 나오는 대로 영국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 진학해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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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북한대사관의 모습. [유튜브 캡처, 중앙포토, 가디언 캡처]

영국 현지 언론은 태 공사 차남의 이름을 ‘금혁(Kum Hyok)’이라고 보도했다. 농구를 좋아하고 페이스북을 즐겨 사용한 차남은 게임 마니아였다. 총 쏘기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누적 게임 시간이 지난해에만 368시간에 달했다. 그의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였다. 망명 전 삭제했기 때문인지 18일 현재 페이스북에서 그의 계정은 찾을 수 없는 상태다.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은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으로 페니실린 발견자인 알렉산더 플레밍 등 노벨상 수상자를 14명이나 배출했다. 하지만 학비가 연 2만6000파운드(약 3766만원)에 달한다. 대북 소식통은 “태 공사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2013년과 2014년 영국 공산당 주최 강연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적도 있다. 태 공사는 강연에서 “한 달에 1200파운드(약 175만원)로 침실 2개에 좁은 부엌이 있는 아파트에 사는데 (평양의) 친구들은 수영장과 사우나까지 갖춘 저택에 사는 줄 안다” 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태 공사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며 본국에서 외화 송금 압박을 한다고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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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이 보도한 태영호 공사의 차남. 그는 영국 명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유튜브 캡처, 중앙포토, 가디언 캡처]

태 공사와 친분이 있던 서울특파원 출신 스티브 에번스 BBC 기자는 16일(현지시간) 태 공사가 자신에게 “서울에서의 삶은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에번스는 “태 공사가 좋아하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며 “태 공사가 골프를 너무 좋아해 부인(오혜선·50)이 ‘골프와 나 중 하나를 택하라. 골프를 택하면 난 평양으로 돌아가겠다’고 문제를 삼자 테니스 클럽에 등록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에번스는 “태 공사의 (망명) 결정이 기쁘다”며 “그가 좋아하는 인도식 커리를 서울에서도 즐기는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고 적었다.

북한 외교관의 통상 재임 기간은 3년이다. 하지만 태 공사는 이를 훌쩍 넘겨 10년 이상 영국에서 근무했다. 또 탈북 가능성을 우려해 자녀는 평양에 ‘볼모’로 남겨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 아들도 함께 영국에서 생활했다.

대북 소식통은 “자녀를 함께 보내주는 것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수표(手票·자필 서명)를 통한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태 공사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입국한 외교관 탈북자들은 태 공사처럼 대부분 부인과 2명 안팎의 자녀가 함께 왔다”며 “철저한 준비 끝에 평양의 자녀들을 해외로 불러내 함께 생활하다가 이민형 탈북을 결행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태 공사의 2남1녀 중 딸은 북한에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소식통은 “딸은 북한에 남아 있는 걸로 안다”고 전했으나 통일부 당국자는 태 공사의 딸에 대해선 “답해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전수진·홍주희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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