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개헌대회 중간 결산|"성공" 자 평 속에 숙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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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의 개헌 추진위 시도지부 결성대회가 지난 번 대전 집회로 꼭 절반이 끝났다.
오는 26일 여섯 번째로 열릴 인천집회는 지역이 수도권이라는 점과 신민당의 열기 고조전략·시국정황 등으로 보아 앞으로의 정국에 한 분기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여권에 개헌 민 의를 확인시키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의지계발·전국적인 조직화를 목표로 시작된 시도지부 결성대회는 동원 인파·청중호응 등으로 볼 때 신민당이 자평 하듯「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지만 다섯 차례의 대회를 통해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겨 준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신민당은 이번 대회를 통해 ▲국민적 개헌의사가 지역·계층을 불문하고 전국적 현실임이 확인됐고 ▲지금까지 위축됐던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시가 자유스러워져 서명 동참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종교계 등 재야단체의 서명참여가 촉발되고 학계등이 시국선언문 발표로 간접 참여케 된 점 등이 성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최근 시국에서 보는 전사회적 반향은 신민당의 주체적 행사가 없었더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파급효과요, 민주화 운동의 중간결실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양 김씨에 대한 지역적 선호성향과 구별이 극복되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공감대」과시로 정치인들의 자세가 달라지게 됨으로써 신민당으로서는 내부전열을 다지는 부수 효과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측면과 아울러 지적돼야 할 문제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초 신민당은 결성대회가 시작되면 국민들의 자연발생적 호응이 있을 것으로 낙관했으나 서울대회를 치르고 난 후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 대회에서부터는 대대적 선전활동과 조직동원을 시작했으며, 그후 시-도 대항전의 성격으로 대회의 규모와 열기가 급상승된 느낌이 없지 않다.
대회의 진행이나 성격으로 보아 행사의 초점은 이민우 총재와 두 김씨의 연설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서울·부산·광주에서는 실제 진행이 그렇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광주시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행사와 시위 주체간의 분리현상이 대구 대회에서부터는 더 완연히 나타났다.
대구 대회부터는 3인의 연설보다 대회가 끝난 뒤 현판식장으로 이어지는 도보행진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것 같다.
이 같은 현상은 3인의 연설이 거듭됨에 따른 신선도의 감소, 언론의 제한적 보도, 연설내용에 대한 여권의 무반응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조직적으로 대회의 중심을「시위」에 두려는 적극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광주대회 이후 신민당과는 무관하게(?)주로 민통련 등 재야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학생 등 청년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대구대회 같은 데서는 3인의 연설도중 대회진행을 무시한 시위가 있었으며, 대전대회에서도 사회자의『이민우』『김영삼』『김대중』이라는 도 창에도 불구, 대회장밖에 포진한 이들은 의도적으로 그때마다『독재타도』등 다른 구호를 외쳐 대며 자신들만의 기류를 만들어 내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즉 신민당 집회를 이용한 독자적인 의사표현에 더 관심을 갖는 집단이 있다는 뚜렷한 선언행위를 반복하는 양상이 빚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비조직적인 일반 시민들과는 달리 머리띠를 두르는 등 조직력을 과시하며 현판식장으로의 도보행진을 실질적으로 장악해 온 느낌이다.
이처럼 신민당 행사가 대회와 시위의 두 갈래로 나타나고 두 갈래의 주체가 상이하다는 현상은 한마디로 신민당과 재야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결성대회가 계속됨에 따라 이 행사의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더욱 불분명해지고 있으며 신민당이 과연 야권의 구심점으로서 개헌정국의 야 측 기류를 장악하고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없지 않은 것이다.
또 이 같은 현상을 보는 신민당내의 시각차도 상당히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행사 후 시위를 통제하고 예정되지 않은 구호나 플래카드를 금지시키자는 측이 있고 이런 통제에 열의가 없는 측도 있다.
물론 신민당 측은 이런 해석을 부인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방향에 있어 학생·재야단체와 신민당이 같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일부 재야 측의「삼민헌법」-「헌법제정 위」구성 논이나 과격한 방법론이「민주헌법」-국회-「비폭력·평화적」방법이라는 신민당 측 방법론에 이미 흡수됐다고 주장한다.
행사를 통해 재야단체와의 사전협조가 잘 되고 있으며 협력체제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 신민당 주장이다. 설혹 그런 양상이 없지 않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또 한가지, 신민당이 다섯 번의 행사를 성공적이었다고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서명자 숫자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4월말까지 1백만 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받아 놓은 서명은 야권 전체를 합치더라도 엄청난 미달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에는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는 말도 있고 서명촉진을 위한 가두서명 주장 등 고심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 밖에 이번 대회들을 통해 나타난 문제점으로는 두 김씨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할지라도 일부 불필요한 인기 경쟁적 양상이 없지 않았다는 점이 있고 개헌 붐 조성이라는 선전전의 국면을 넘어선 다음 단계에서의 정국운영 방향과 앞으로 남은 결성대회의 성격을 둘러싼 미묘한 입장차이 등 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재야가 촉구하는 가두서명을 결성대회와 병행할 것인 지의 여부 등은 앞으로의 행사가 어떤 성격변화를 겪을 지와 관련해 관심사가 아닐 수 없고 정국운용의 템포와 관련, 재야단체와의 호흡조정·국회의 활용문제 등에 있어서도 아직 당론이 집약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지역들이 인천과 마산을 제외하고는 야권의 부모(?)또는 비주류 측 장악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갈등과 불안요소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신민당의 5차례 결성대회는 개헌무드의 전국 확산과 정치상황의 고양 등 신민당이 성공적이라고 자 평할 만한 요소들도 있지만 야권의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견해와 이해의 틈새가 과정에서 노출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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