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발코니 불법개조 단속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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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동작구청이 발코니(베란다)를 튼 신규 아파트 3백여 가구에 복원 명령을 내리는 등 건설교통부의 아파트 불법 개조에 대한 강력 단속 방침이 현실화되자 입주 예정자들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 입주를 눈앞에 두고 이미 확장 공사를 계약한 가구는 걱정이 태산같다.

충남 천안의 한 네티즌(ID 이은석)은 시홈페이지에 "확장공사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태에서 단속한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다"는 글을 올렸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건교부 지침에 따라 발코니 확장을 강력 단속하면 시공사는 '눈속임 분양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수백만원씩 확장 공사 계약금을 받은 시공사의 리모델링 전문 계열사 등 확장공사 업체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받은 계약금으로 이미 확장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구입한 업체는 계약금을 돌려주기 힘들어 군소 업체와 공사 계약을 맺은 입주자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확장 단속나선 지자체=1주일전 입주가 시작된 8백60세대의 전주 완산구 중화산동 코오롱 하늘채 아파트의 현관 입구에는 확장공사로 뜯어낸 콘크리트 자루와 분리된 창틀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완산구청은 최근 이 단지의 불법개조 단속을 벌여 1백20여건을 적발했다. 그러나 단속에도 아랑곳없이 불법 개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완산구청은 관계공무원을 4개조로 편성, 가가호호를 돌며 단속을 벌이고 있다.

완산구청은 일단 적발된 가구에 대해 다음달 18일까지 원상복구토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불응하는 가구는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고발돼 1년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대전시 동구청은 며칠전 가양동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대주건설에 모델하우스 '정상 시공'를 지시했다. 설계 도면대로 공개안하면 분양 승인을 해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건설사는 공고 예정일에 맞추려 발코니에 깔았던 마루를 걷어내고 다시 타일을 시공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속타는 입주자=천안의 경우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지난해 아파트 공급이 봇물을 이뤘다.북부.백석.불당 등 3개 택지지구에서 18개업체 1만2천여 가구의 아파트가 분양됐다. 이들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1년이내 입주를 앞두고 이미 확장 공사 계약을 맺은 상태다.

당시 이들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하나같이 거실은 물론, 방까지 확장된 채 공개됐다. 대신 거실과 트여진 발코니 한구석에 '본 시공때는 다르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분양 홍보물에는 '확장을 고려한 아파트 설계'라며 확장 계약을 부추겼다. 시공사가 모델하우스의 발코니를 터 공개하는 것은 분양 평수에 비해 적어진 전용면적을 숨기기 위해서다.

강원도 삼척 교동택지지구서 (주)현진에버빌은 지난달부터 아파트 4백55가구를 분양하고 있다. 이 업체의 38평형(분양가 1억6천5백만원)은 전용면적이 고작 25.7평(국민주택 규모)이다. 이에 모델하우스의 거실과 방(3개)을 모두 발코니까지 확장했다. 이 아파트 계약자 대부분은 확장 공사(1천4백8만원)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싼 개조 비용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아파트도 있다.

지난해 분양한 천안 백석동의 호반리젠시빌 아파트(9백33가구)의 입주자들은 최근 "개조 공사에 쓰는 일부 자재의 질이 떨어지는데다 다른 개조 업체는 수백만원이나 싼 값으로 시공 계약을 맺고 있다"며 해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며칠전 시공사에 계약해지 요구서를 보냈다. 입주자들은 "아파트 계약당시 확장 공사 계약까지 받으면서 '안하면 손해'라는 식의 강박 분위기를 조성, 계약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도 리모델링 계열사를 앞세워 추가 접수를 받고 있다.

한편 주부 김성자(45.광주시 남구 봉선동)씨는 "비좁은 거주 공간을 넓히려 베란다를 확장한 주민들을 불법자로 만들지 말고 안전 조치를 보완하는 등 관련 법을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속 제대로 될까=건교부가 지자체에 내린 단속 지침에 따르면 아파트 사용승인(준공검사)때 발코니에 난방코일이 깔렸는가, 거실 창문틀을 벽체에 고정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설치했나 등을 꼼꼼히 살피도록 되어 있다.더욱이 준공검사후 2~5개월 동안 수시로 확인 점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천안시 건축과 관계자는 "향후 1년동안 1만3천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인데 직원들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아파트만 감시하러 다니라는 말이냐"며 단속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로 1995년 수도권에서 대대적인 아파트 불법 개조 단속이 있었으나 주민들 반발로 곧 중단됐고 주택건설촉진법의 '불법개조(증축) 금지'조항(38조 2항)은 유명무실화됐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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