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저 호황」위엔 그늘도 있다|1·4분기의 결산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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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기획원이 내놓은 1·4분기 경제지표는 3저 호기를 맞은 우리경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상승궤도에 진입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수출은 지난 3개월 간 73억9천6백만 달러의 실적을 올려 전년동기대비 27·6%의 높은 신장률을 보였으며 작년에 한때 76%수준까지 떨어졌던 제조업 가동률도 금년2월에는 80·8%까지 회복됐다.
산업생산과 출하동향도 1월에 각각 전년 동 월 대비 11·6%와 10·9%의 증가를 보인데 이어 2월에는 12·7%와 12·5%로 증가율이 높아졌다.
이처럼 경제가 활기를 띠면 으레 고개를 들던 물가도 3월에는 도·소매물가가 모두 하락했으며 작년 말과 비교해도 도매물가는 2·6%가 떨어졌고 소비자 물가는 0·7% 상승에 그쳤다.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투자동향은 2월중 제조업부문의 건설수주가 전년 동 월 대비 81·2%가 늘고 기계수주도 19%가 증가하는 등 상당한 활기를 보였고 시설자금 공급도 1,2욀 중 7천9백90억 원이 풀려 전년 동기 비 30·9%의 증가를 보였다.
그러나 공업용건축허가 면적이 전년 동월 비 18·9%나 감소했으며 봄철에 들면서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어 앞으로의 투자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금년 경제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의 경제동향을 나타내는 각종지표의 비교시점이 대부분 경기가 바닥을 때렸던 작년 1·4분기라는 점이다.
작년 1월부터 3월까지의 경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올해에는 생산이나 수출이 조금만 좋아져도 지표 상으로는 엄청나게 좋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또 한가지 우리가 3저의 호재 중 하나로 꼽고 있는 엔화강세·달러화약세가 우리경제에 주는 손익을 냉정히 계산할 필요가 있다.
작년9욀 5개국 재무부장관회의(G5)의 결정으로 엔화가 대폭 절상된 이래 5개월 간(85년 10월∼86년 2월) 우리의 대일 무역은 16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엔화강세로 소재·부품·기계 등의 수입부담이 크게 늘어난 반면 J커브효과 때문에 대일 수출은 당장 괄목할 신장을 보이지 못한 때문이다.
물론 엔화강세로 우리상품의 일본상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구미시장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금년 1·4분기 중에만 대구주지역 수출은 61·2%, 미국시장에 대한수출은 31·5%나 늘었다.
그러나 대미혹자의 증가(올해 들어 2월말현재 7억8천만 달러)는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격화시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흑자의 40∼50%(경제기획원추산)는 소재·부품·기계대금 등으로 일본에 돌려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엔화강세로 국내기업들이 받는 수지압박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입 해다 쓰는 수출용 원자재의 대일 의존도는 34·3%, 공업용원료는 41·5%, 부품·기계 등 자본재는 40·9%에 달한다(상공부집계). 전자제품의 경우 수입부품의 80%를 일본에 의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이들 수입원·기자재의 가격이 엔화강세로 한꺼번에 30%이상이 오르니 원가부담이 높아져 기업에 따라서는 대미 달러 환율인상이나 유가하락에 따른 혜택을 잠식하고도 모자란다는 얘기다.
수입원자재 등의 가격이 오른 만큼 수출단가를 올리지도 못해 수출기업의 수지에 큰 압박을 주고 있다.
정부는 두 차례의 유가인하 후 관련 공산품가격의 인하를 종용하고 있지만 소재·부품 등의 대일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엔화강세로 인한 원가상승 요인이 높아 제품 가 인하가 사실상 벽에 부닥쳐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엔화강세로 일본국내에 10조 엔의 감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지만 연간 76억 달러 어치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30%의 엔화절상이 수입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 2조원의 증세효과를 가져온다. 그만큼 우리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엔화강세로 기계·부품 등의 수입가격이 오른 것은 국산화 촉진에 큰 자극제가 되고 민-관이 힘을 합해 국산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나 국산화가 될 때까지 기업이 짊어질 부담증가는 올해 우리경제를 내다보는데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입원자재, 특히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원·기자재 가격의 상승이 물가로 파급되는 것을 다행히 원유가 하락이 막아 주고 있는 셈이지만 에너지의 원가비중보다 수입부품 등의 원가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언제 제품 가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도·소매물가가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물가에 대한 걱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처럼 보일지 모르나 불안요인은 또 있다. 통화증발이다.
3월중의 총 통화 증가율은 2월의 13·8%에서 한꺼번에 2·4% 포인트나 늘어난 16·2%를 기록했다. 제2금융권 여신까지를 합한 총유동성은 전년동기대비 20·6%나 증가한 상태다.
정부일각에는 총통화가 늘어나더라도 저축성예금으로 흡수되고 있으니 물가에는 영향이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저축성예금 중에는 투기대상이 생기거나 인플레기미만 보이면 언제든지 구매력으로 바뀔 수 있는 대기성예금의 비중이 높은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증가 등으로 해외부문의 통화증발이 2월의 4백45억 원에서 3월에는 1천8백28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월중에 36·3%나 증가했던 수출이 3월에는 12·5%로 증가세가 둔화되고, 수출신용장 내도 액도 2월의 31·9%에서 14·1%로 뚝 떨어진 것도 그 이유를 철저히 검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저 시대라고 들떠 있는 사이에 어느 한곳에서라도 물이 새는 일이 있어서는 순조로운 항해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출·제조업가동률 등 모든 지표가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작년 말까지 4·2%수준에 머물러 있던 실업률이 새해 들어 1월에 5·6%, 2월에 6·7%, 3월에 5·4%등 아직도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점의 일면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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