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알선업자 규모 무방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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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백 만원의 급전을 빌면서 사채알선업자의 농간에 속아 1천 만원을 빈 것처럼 차용증서를 써 주었다면 채무자는 나머지 5백 만원에 대해서도 갚아야할 책임이 있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1심에서는 채무자가 실제로 차용한 5백 만원만 갚으면 된다고 엇갈린 판결을 내린바 있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이 사건은 사채거래 관행상 전주 대신 사채알선업자들이 채무자와 접촉하고 있는 데다 악덕 알선업자들은 채무자의 약점을 이용, 차용증서에 액수를 늘려. 기재토록 하고있는 현실로 볼 때 자칫하면 전주와 알선업자들이 짜고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사채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큰 경종이 되고있다.
◇사건개요=80년 12월 신종승씨(서울 상도동)는 서울 장교동47 대창빌딩에서 사채알선업자 최종찬씨에게서 5백 만원을 빌어 썼다.
대지41평· 건평 21평인 신씨 집을 담보로 했으나 최씨는 차용원리금을 갚지 못할 경우 재판비용 등을 확보한다며 차용금액을 실제의 2배인 1천 만원으로 증서를 써달라고 요구, 신씨는 급한 김에 별 의식 없이 응해 증서를 써줬다.
최씨는 이 증서를 근거로 전주 이기술씨(서울 장위동230) 등 2명에게서 1천 만원을 받아내 신씨에게 5백 만원을 차용해주고 나머지5백 만원은 자신이 써버렸다.
또 8개월 후 신씨가 빈 5백 만원을 갚자 이것마저 알선업자 최씨가 챙겨 달아나자 전주인 이씨 등이 신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
즉 채무자 신씨는 5백 만원을 빌어 쓰고 8개월만에 원금· 이자를 모두 갚았다는 주장이고 전주 이씨 등은 빌려준 돈이 1천 만원이고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는 엇갈린 주장을 했던 것.
◇2심 판결=서울고법 제12민사부 (재판장 노승두 부장판사) 는 14일 『사채알선업자인 최씨는 원고인 전주 이씨 등을 상대할 때는 채무자인 피고 신씨의 대리인 구실을 하고 차용자인 신씨를 상대할 때는 전주 이씨 등의 대리인구실을 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밝히고 『피고 신씨는 차용증서에 기재한대로 나머지 5백 만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고 밝혔다.
재판부는 동시에『전주인 원고 이씨 등도 알선업자 최씨에게 차용원리금의 수령대리권을 위임한 이상 피고 신씨가 최씨에게 준 5백 만원과 이자에 대해서는 신씨에게 변제책임을 요구할 수 없다』 고 판결했다.
◇1심 판결=서울지법 남부지원은 지난해6월 『피고 신씨는 원고 이씨 등의 대리인인 최.씨에게 실제 빈돈 모두를 갚았으므로 신씨 집에 대한 담보가등기는 그 효력이 없다』고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이씨 등은 대리인 위치에 있는 최씨가 실제로 빌려주지 않고 가로챈 금액에 대해서까지 피고 신씨에게 변제를 구할 수 없다』 고 원고패소이유를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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