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풀이 시위' 극성… 지자체들 공동대처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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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청 공무원들은 지난달 17일 오전 홍역을 치렀다. 오전 9시쯤부터 고산면의 한 마을 주민 20여명이 청사(廳舍)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주변 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군수실 앞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군수 나오라"며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페트병을 두드리는 등 소동을 피웠다.

지난 1일에는 경남 마산시 진동면 인곡 쓰레기소각장 건립 저지 투쟁위원회 소속 주민 7백여명이 마산시장을 에워싸고 소각장 백지화를 요구하는 험악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이 소동 속에 시장은 경찰의 도움으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공공기관이나 자치단체장을 상대로 한 '화풀이'성 물리력 행사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민원 해결을 위한 단순 시위나 집회가 아닌 ▶쓰레기 투척▶건물 점거▶방화 기도 등 시위 방법도 극렬해지고 있는 것이다.

화풀이 대상이 된 공공기관과 자치단체장=지난 14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 앞 마당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주민 유모(51)씨가 자신의 논바닥에 쌓여 있던 쓰레기 2.5t을 군청 마당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군청이 양어장 허가를 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쓰레기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군청 직원들은 "그사람은 허가도 나기 전에 양어장 시설을 만들어 놓고, 막무가내로 허가를 내달라며 떼를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5일에는 무면허운전 등의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유모(45)씨가 전북 완주경찰서 동상파출소에 독사 20여마리를 풀어 경찰관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유씨는 "자꾸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 게 괘씸해 뱀을 풀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에는 경북 울릉군수 관사가 불에 탈 뻔했다. 벽돌 공장을 운영하는 梁모(43)씨가 관사 앞 계단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는 것을 한 공무원이 제지해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梁씨는 경찰에서 "군청이 사동항 방파제 신축공사를 하는 바람에 배에 실린 벽돌용 모래를 하역하지 못해 피해가 커져 홧김에 불을 지르려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잦은 경남 사천지역 8개 기관.단체장들은 지난 14일 사천시청에서 지역안정대책회의를 열고 정당한 요구를 넘어선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공동 대처키로 결의하기도 했다.

전문가 의견=전문가들은 경제상황이 악화되거나, 사회가 불안해지면 소외 계층이나 불만 세력의 분노가 깊어지다가 결국 폭발하게 된다고 말한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등 잇따른 파업과 각종 이익단체의 실력행사가 나름의 '성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집단행동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충북대 강형기(행정학)교수는 "실정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도한 의사표출 방식이 묵인되는 요즘의 풍토가 문제"라며 "민주적인 의사표시는 존중하되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최광선(사회심리학)교수는 "화풀이 범죄는 권력기관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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