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호주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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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제6차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기간 안에 여성차별을 없애기로 한「여성개발 부문 계획안」은 우리 사회의 구조와 통념에 대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여성의 법적 지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기본으로 해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구성이 핵가족으로 분산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여권도 같은 속도로 신장돼 온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남존여비의 사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까지는 말하기 어려워도 이제 칠거지악이나 삼종의 미덕을 운위하던 테두리를 벗어난 지는 오래다.
헌법은 모든 부문에서의 기회균등과 남녀평등의 원칙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고, 민법도 여자의 분가나 처의 무능력제의 폐지, 부부별산제 등을 인정하고 있다. 재판상 이혼 원인에 있어서도「처의 부정」만을 문제삼던 것이「배우자의 부정」으로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의 계획안은 이보다 한 걸음 나아가 남녀차별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호주제도를 고쳐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재산 상속에서의 남녀차별을 없애도록 하며 동성동본 혼인도 일정 촌수를 넘어선 관계면 이를 허용키로 하는 등 획기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행 민법은 호주는 우선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가 계승하고 남자가 없을 때에만 직계비속여자가 호주 상속을 받게 돼 있다. 딸도 없는 경우 처 쪽에 상속권이 돌아가게 돼 있다. 이같이 현행 호주제도가 남자 쪽 혈통을 이어가는데 우 선을 두고 있는 것은 남존여비 사상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동본 혈족간의 통혼 금지 조항도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혈족, 즉 부계의 혈족만을 중시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남녀를 차별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혼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못지 않게 거센 것도 현실이다.
유림측은 남녀의 차별을 남편과 아내의 역할의「구별」과「분담」이라고 주장하고 가족법이 개 정된다면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도의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성동본 혼인문제도 윤리적 측면에서의 부당성은 물론 우생학적 학설까지 내세우면서 극 력 반대해 왔다.
헌법에도 보장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합리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양 사회의 정신이요, 전통인 윤리주의에서 보면 후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억지라고만 볼 수도 없다.
우리 사회는 동양사상을 뿌리로 하고는 있으나 민주주의나 개인주의 같은 서구사상에 ??합되어 새로운 가치관을 찾아내는 진통의 과정에 있다.
서양의 합리주의와 법치주의가 인간의 권리주장에 치중하고 있다면 동양의 덕치주의는 도리와 의무를 보다 더 값있는 것으로 친다. 따라서 우리의 가족법도 어느 한쪽을 버리고 택하는 취사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와 양보의 선에서 진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전통은 오늘의 시대에 맞게 현실화돼야 할 것이며, 오늘의 각박한 현실은 법의 차원에서만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전통과 미덕을 수용하는데서 만 독창적인 우리 고유의 질서로 발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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