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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운찬 칼럼

무늬만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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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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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11월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동안, 마침 나는 그곳에서 전당대회 과정을 TV로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록 피상적인 관찰 수준이었지만 현지의 전문가들에게 직접 듣는 전망과 해설은 서울에서 간접적으로 전해 듣던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오랫동안 미국에 뿌리를 내린 동포들의 현실 인식이나 대선 전망 또한 우리나라 주류 언론이 전하는 동향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단적인 예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평가다.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선호도는 각기 달랐지만, 현지에서 미국 정치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조언은 우리나라가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다각도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젭 부시처럼 준비된 정치인 16명을 차례로 넘어뜨리고 대선 티켓을 쟁취한 기폭제는 백인 중산층 사이에 팽배한 기득권층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며, 끊임없는 독설과 기성 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에서 카타르시스 이상의 대리만족과 희망을 찾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게 그분들이 내세운 논거였다.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게 여론이고, 낙엽보다 더 빨리 시드는 게 정치인들의 인기라 벌써부터 선거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짓이다. 게다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선이란 큰 게임은 두세 번 요동치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누가 승리를 거머쥐든 미국 정치를 주도해온 양대 정당은 이미 절반은 실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치 기반이 별로 없는 기업인이 걸출한 지도자 에이브러햄 링컨을 포함해 19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되고, 민주당 내 연고가 없던 변방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요구가 금융위기를 자초한 월스트리트 그리고 그 너머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면,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현상은 미국식 양당 정치와 미국식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옐로카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람이 70%를 넘는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그들만의 리그, 0.1%만의 잔치에 대한 미국인의 소외와 분노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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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일상적 현상이 돼버렸다는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 세계 전체는 지금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도 같은 맥락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서 무수단리까지 동북아시아에 드리운 긴장도 심상치 않다. 이 험난한 현실 앞에 우리는 옳은 길을 바로 가고 있는가. 우리 후손들의 내일은 오늘 우리보다 평화롭고 행복할까.

 정부 수립 당시부터 우리는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그 뒤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을 통해 적어도 무늬만큼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만들었다.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고 원하지 않으면 탄핵할 수 있는 문도 열어놓았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제도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왜 거의 모든 대통령들은 결국 낙제점을 받으며 청와대를 떠났을까. 갈등과 분열을 극대화해 대통령 선거를 이기는 법은 알았지만, 정작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을 이끄는 법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이 주인’이라는 초심은 오간 데 없고 전제군주처럼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정을 농단하느라 폭넓게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본연의 임무는 소홀히 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친박’이니 ‘진박’이니 충성경쟁을 벌이다 총선에 지고서도 대통령 비서 출신에게 집권당의 운영을 맡긴 전당대회는 애당초 국민적 여망이나 시대정신을 담아낼 여지가 많지 않았다. ‘친노’와 ‘반노’로 나뉘어 과거에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과연 저성장으로부터의 탈출이나 양극화 완화와 같은 당면 과제를 해소할 기틀이 만들어질지도 의문이다. 또한 전당대회 일정을 잡기 전에 스캔들로 얼룩지면 신당의 정체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에다 끼리끼리 저지르는 부정부패에 눈을 감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정부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는가. 합리적 반대에도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국민을 편 가르고, 서별관 밀실에 몇몇이 모여 수조원대 추가 적자가 예상되는 기업에 그보다 더 막대한 뭉텅이 돈을 지원키로 결정하는 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며 나라를 자조하고 정부를 외면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겠다는 후보 당시의 겸허한 자세로 돌아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대통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