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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바깥 세상을 읽어내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2호 32면

저자: 줄리엣 해킹 역자: 이상미 출판사: 시공아트 가격: 3만6000원

예술가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작품에 누를 끼친다고 여겨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은 작품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나머지 말을 보태거나 혹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가발전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쪽이든 작품을 읽어내는 게 녹록지는 않다. 정보가 너무 없어도 이해가 힘들고, 거짓 정보가 넘쳐난다면 그것들을 선별해 가려 듣기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사진 분야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사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팬들을 위해 거장 38명의 이야기에서 고갱이만을 엮어냈다. 19~20세기에 태어나 자신의 주관성을 실체화하고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예술의 형태를 갖춰간 이들을 추리되,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불확실한 정보는 모두 제외했다. 특정 인물이 의도치않게 영웅으로 떠오르거나 사후에 이름만 유명해진 고독한 천재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정제된 정보들 덕분에 독자들은 프레임 바깥의 세상에 대해 마음껏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앤설 애덤스(1902~1984)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찍은 ‘돌기둥, 하프 돔의 정면’(1927) 같은 장면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그는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차양과 창 상단 사이의 공간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그것이 핀홀 역할을 하여 창 바깥 풍경이 흐릿한 상으로 천장에 맺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자연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데 힘써왔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이들이 살았던 시대 배경 역시 사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된다. 20세기 초반 주요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유대계 혈통, 이름을 바꾼 경험, 뚜렷한 좌파 성향, 여러 지역을 방황하는 삶 같은 특징이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탓이다. 이는 다이안 아버스(1923~1971) 같은 여성 사진가들에게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크라이나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폴란드 이민자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스는 “우리가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는 유산은 아주 영광스러운 낙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그는 부르주아적 태생의 권태와 용맹함의 한계 사이에서 분투하며 피사체에 대한 감정 이입을 극단적으로 피했다.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1815~1879) 또한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자매 중 여섯이 현지인과 결혼하는 등 기존 영국인들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성장과정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 영국 상위 중산층의 가치관을 드러냈다고 평가받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자의 이 같은 시도는 종으로 횡으로 무한확대된다. 사진가의 창작 자유와 저작권 보호를 위해 함께 협동조합 형태의 에이전시 매그넘을 설립한 로버트 카파(1913~1954)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을 묶어 그들이 담아낸 유럽과 아시아를 비교해 본다거나, 할렘에서 태어난 로이 디캐러바(1919~2009)가 어떻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와 재즈를 시각적으로 융합시켰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가 주로 기록해 온 백인ㆍ이성애자ㆍ남성에 맞춰져 있던 포커스는 유색인ㆍ동성애자ㆍ여성으로 퍼져나감은 물론이다. 특히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가 “미와 악은 같은 것”이라며 종교적 이미지를 에로틱하게 표현하거나, 노동자 계급의 흑인 남성에 집착하며 그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은 묵직하지만 읽기가 어렵진 않다. 오히려 예술가들의 더 많은 사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울 뿐이다. 백과사전같이 옆에 두고 흥미가 생기는 인물이 생길 때마다 한 명씩 작품세계를 파헤쳐보는 것도 방법이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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