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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텔링] 경마장 가려고 빈집 턴 전직 프로야구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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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범행 장소로 향하는 CCTV 속 피의자 이모씨의 모습. [사진 성동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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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경마장 갈 돈을 마련하려고 빈집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대학 졸업 후 명문 프로구단에 입단했던 2005년만 해도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우완 투수로 꼽혔던 그에게 10년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모(33)씨는 서울 소재 대학 졸업반이었던 2004년 지방의 프로야구 명문구단으로부터 2차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언론에 ‘시속 146㎞의 공을 던지는 유망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계약금 4000만원에 연봉 2000만원으로 계약하고 2005년 구단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후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데뷔 첫해 시즌 중반에 터졌습니다. 대학 때부터 그를 괴롭혔던 어깨부상이 재발했기 때문입니다. 프로무대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기대했던 그에게 큰 악재였습니다.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구단은 이씨를 그해 9월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하고 방출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이씨를 기다린 것은 생활고였습니다. 받은 돈 대부분을 재활비용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견디다 못한 부인은 이듬해인 2006년 그를 떠났습니다.

방황하던 이씨는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한 헬스클럽에 트레이너로 취직한 것입니다. 2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헬스클럽도 손님이 없어 문을 닫게 됐습니다. 또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된 이씨는 야구선수로 재기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0대 후반의 나이가 된 그에게 기회를 주는 구단은 없었습니다. 그때 이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경마였습니다. 우연히 친구와 경기도 소재 스크린 경마장에 놀러갔다가 재미를 붙이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이씨는 일용직 청소 노동자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용돈을 전부 경마장에서 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렸지만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경마에 빠진 그에게 손길을 내민 건 범죄의 유혹이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2009년 빈집을 털어 경마장에 갈 돈을 마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집이 빈 것을 확인하고 현관 신발장 주변에 놓인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현금과 귀금속을 훔쳤습니다. 여섯 차례의 범행으로 수천만원을 챙겼지만 결국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2010년에 법원은 그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전과자가 됐지만 도박을 끊기는 힘들었습니다. 수년간 낮에는 스크린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PC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다세대 주택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항상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자 범죄의 유혹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이씨는 지난달 1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빈집에 들어가 현금 50만원과 35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습니다. ‘집에 있던 휴가비와 금팔찌가 없어졌다’는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씨를 지난 4일 인근 PC방에서 검거했습니다.

성동경찰서는 이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12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범행에 대해서 묻자 이씨는 증거가 나오면 자백하겠다고 담담히 말했다”며 “인생에 대한 회한이나 후회는 크게 없어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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