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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은 돼도 문재인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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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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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살펴봤는데 대체로 세 가지 허점이 있다. 첫째 북한이 핵미사일을 한국 영토에 발사하면 어떻게 막을까에 대한 답이 없다. 이 문제는 치명적이다. 한 달 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 미사일의 사거리(최대 1300㎞)를 600㎞로 조정해 동해 쪽으로 날렸을 때 그의 책상 위엔 한반도 지도가 놓여 있었다. 미사일의 낙탄 지점을 시계 방향으로 80도 틀게 되면 부산항과 김해공항이 된다. 부산항과 김해공항은 유사시 미군의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길목이다. 만일 남북 간 전시 상황이 발생한다면 김정은은 수도권을 향해 수백, 수천 발의 장사정포를, 미 증원 전력의 길목엔 노동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사드는 노동 미사일 방어용이다. 사드를 수도권이 아닌 한국의 남쪽 성주에 배치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배치 지역이 왜 수도권이 아니냐, 한국인 보호용이 아니라 미군 방어용이기 때문 아니냐’는 질문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해대는데 우스꽝스럽다. 미사일이 터질 때 피해는 한국인과 미군을 가리지 않는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김정은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 ‘미사일을 일본이나 미국을 향해서만 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남북한 핵·미사일전이 벌어지면 한민족이 공멸할 것이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혹은 “그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북한·중국·미국을 설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대답이다. 문제의 치명성에 비해 그들의 해법은 화가 날 정도로 낭만적이거나 비현실적이다. 명징한 현실 검증력 대신 내면에 망상적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방송인 김제동 같은 비전문가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이 나라 안보를 책임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사드 배치 반대론들자의 두 번째 허점은 한국 정부가 중국을 화나게 해서 큰일 났다는 호들갑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는 중국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 응해 “사드는 북한의 미사일도 요격하지만 탐지 거리 2000㎞인 X-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감시한다. 사드가 실제 배치되면 한·중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끝이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세현씨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과장해 얘기했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는 고정식으로 운용 거리 900㎞ 미만인 대북 요격용이다. 정씨가 거론한 탐지 거리 2000㎞짜리 레이더는 요격용이 아닌 조기 감시용이다.

마침 어제 방한한 제임스 시링 미국 미사일방어청장도 “한국에 배치할 사드는 (요격용) 종말 모드이며 2000㎞ (감시용) 전방 모드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마 중국 정부가 들으라고 한 소리 같다. 중국과 미국은 조만간 ‘성주 사드’ 문제로 전략대화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화에서 양국 간 사실관계가 확정되면 사실을 비틀어 호들갑을 떤 사람들이 좀 뻘쭘해질 것이다.

그들의 세 번째 허점은 우리 정부가 사드를 취소하더라도 한·미 동맹이 깨지지 않을 것이란 편의적 믿음이다. 당장은 안 깨질지 모른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자신의 보호장구를 본국으로 돌려보낸 한국인을 위해 피를 흘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이후 한국에 비상 상황이 벌어지면 미국의 트럼프나 클린턴 정부가 노동 미사일 공격에 노출될 미군 증원 전력을 파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동맹의 균열은 시작된다.

나는 당권 주자를 비롯해 더민주 의원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사드 배치 반대론에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답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대부분 박근혜 정부에 원한이 맺혀서, 정권 교체를 해야 하기에, 미국의 패권주의가 싫어서 사드를 거부한다. 나 역시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정치’와 미국의 일방주의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미제 우산이든 싫은 사람이 편 우산이든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한다. 정부가 밉다고 안보까지 미워할 수야 없지 않나.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