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투자 늘리고 국제 경쟁력 강화|시설 자금 금리 인하 배경과 효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4일 정부가 취한 1년 넘는 설비 자금 및 산업 은행 자금의 대출 금리와 상호 신용 금고의 여수신 금리 인하 조치는 부분적인 금리 조정이긴 하지만 은행 금리를 손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은행 금리, 특히 대출 금리는 국내의 여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84년11월5일 이후 손대지 않았었다.
정부는 은행의 전반적인 예대 금리를 낮추는 문제도 검토했으나 저축 무드는 깨지고 투기가 되살아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대출 금리 폭만 조정했다.
수신 금리를 그대로 놔두고 대출 금리만 손대다보니 1년 이상짜리 설비 자금과 산업 은행 자금에 국한된 꼴이 되었다.
정부가 금리 인하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된 것은 국내외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뀐 때문이다.
첫째 일본·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리 인하 러시 현상이다.
일본이 금년 들어 1월30일, 3월10일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은행의 재할인율을 1%포인트 (연 5%→4%) 내린데 이어 서독·미국·프랑스·영국 등 각국이 0.5%포인트 안팎씩 인하 조치를 취했다.
우리 나라와 가장 경쟁 관계에 있는 대만도 0.25%인하, 대 우량 기업 대출 금리를 6.75%에서 6.5% (중앙은행 재할금 리는 5.25%→4.75%)로 내렸다.
일본은 엔화 강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4, 5월중 다시 0.5%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미국도 추가 인하가 있을 전망이다.
다른 나라는 앞다투어 금리를 내리고 있는데 우리 나라만 가만히 앉아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게 되면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악화는 불문가지다.
둘째는 국내 기업의 투자 촉진 및 기업 재무 구조의 악화 방지 필요성이다.
지난 75∼79년 사이의 제조업 투자 증가율은 평균 21.8%였는데 81∼84년은 평균 7.1%로 뚝 떨어졌다.
기업으로 하여금 설비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려면 금리 인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다.
기업의 재무 구조 악화도 심각한 상태다. 2백43개 상장 회사 중 금융 업종을 제외한 2백18개 사의 작년도 재무 구조를 보면 타인 자본 의존도는 1년간 27.5%나 늘어 총 부채 비율 4백41.4% (총 부채 30조6천50억원)에 지급 이자 총액이 2조2천4백69억원이나 된다. 이것은 작년도 상장 기업 전체의 당기 순익 4천4백76억원의 5배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는 실정이다.
기업이 지고 있는 금융 기관 부채를 50조원으로 잡을 때 1%만 내린다해도 연간 5천억원은 경감된다는 계산이다.
정부가 금리를 인하 조정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하는 세번째 이유는 국내 물가의 안정과 저축의 꾸준한 증가 현상이다.
원유 가격의 대폭적인 하락으로 국내 물가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안정세를 굳혀가고 있고 인플레 기대 심리도 거의 불식된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물가 안정위에 높은 실질 금리 보장으로 저축은 꾸준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 2월 말 현재 은행 저축성 예금의 증가는 약 15%를 기록했다.
그 동안 정부는 신탁 대출·회사채 등 제2금융권의 금리를 작년 하반기 이후 네차례에 걸쳐 소폭 인하했지만 저축은 줄지 않고 대신 시장 금리와 공 금리간의 격차가 꾸준히 좁혀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사채 시장이 파리를 날릴 정도로 시중 자금 사정이 좋아져 시장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 3월6일 자율화한 금융채 및 보증 사채와 CD의 금리도 이미 0.2∼0.25%씩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금리 인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된 것이다.
다만 저축을 늘려 국내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하는 절대 필요성과 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의 금리 인하가 자칫 자금의 초과 수요를 초래, 인플레 심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아직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