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대표 국회 연설-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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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원주의적 사회에서는 어느 세력에 만족스러운 선택이 다른 집단에서는 전혀 수락될 수 없는 복합 갈등적 상황이 그 특성으로 나타나므로 이 같은 갈등은 결국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을 선택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국민들이 참여·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광장을 넓혀가야 한다.
이를 위한 무대가 바로 국회이며 여기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현안의 해결이 바로 정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만 이루어지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 정치를 아스팔트 위로 끌어내고자 시도해왔다.
그러나 잦았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안정되게 떠받쳐온, 조용하나 힘있는 중산층은 결코 급진적인 변혁은 지지하지 않는다.
이 같이 성숙되어 있는 국민들의 정치 의식은 「2·12」총선에서 적절히 표출됐다.
이러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 민정당은 집권 후반기를 훌륭하게 마무리짓고 21세기를 「위대한 한민족의 세기」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첫째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40년 정치 사상에서 전인미답의 경지인 이것이 실현될 때 정부와 정치인데 대한 국민들의 해묵은 불신감은 크게 줄어들고 민주 발전의 밑거름으로서의 역할을 조용하게 수행해온 자부심은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양대 행사는 야당이 극한적으로 비난하듯이 단순한 운동 경기가 결코 아니며 정녕 민족사적 의미를 지니는 모두의 대제전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새해 국정 연설을 통해 정권욕에 사로잡혀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작은 정치」가 아니라 민족의 먼 장래를 생각해서 민족 자산을 늘려 가는 「큰 정치」에 여야가 동참할 것을 호소한데 이어 3당대표를 청와대에 초치, 단임 의지를 재삼 확인하고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89년에 가서 국회와 정부에 설치된 헌법 특별 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놓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쳐 확정하는게 좋겠다』고 밝혀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신민당은 올 가을까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끝내고 내년 중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자는 급속한 정치 일정을 들고 나왔고 이의 관철을 위해 장외 투쟁을 벌일 것을 선언, 정국을 경색 시킨 것이다.
본인은 야당의 조기 개헌론이 혹시라도 86아시안 게임을 담보로 잡고 국제적 대행사를 파탄시킴으로써 정권욕을 만족시키려는 획책은 아닌지, 또는 「마르코스」 정권 붕괴의 여파가 한국에도 미칠지 모른다는 허망한 사대주의적 발상에 연유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임제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만은 반드시 이룩돼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개헌을 논하기에 앞서 개헌의 절차가 여야의 합의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국회 내에 헌특을 구성, 여기서 개헌 문제에 관한 정치적인 타협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개헌 서명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던 정치적 사태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유감스러우나 개헌을 둘러싼 신민당의 최근 언동은 혁명적 방법에 의한 탈권 기도 행위로 생각된다.
12대 국회가 개원 된지 1년도 안됐는데 『이번 국회를 마지막 국회로 생각하라』는 말이 그 한 예다. 헌법 문제 하나가 정치의 전부는 아니고 게다가 정치 발전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할 국가 대사를 치른 후에 국민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개헌을 하겠다는데 이처럼 사생 결단의 투쟁 판으로 치달을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헌법 문제를 다루면서도 민생 문제들의 심의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우리 앞에 닥쳐올 국가적 대사를 원만히 치르고 국가의 명운을 상승 국면으로 끌어올리느냐, 아니면 퇴영의 길로 전락시키느냐 하는 갈림길에선 우리는 더 이상 당리당략적 이해에 얽매여 왈가왈부할 시간과 그럴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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