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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가 국민 되는 헌법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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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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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대한민국헌정회 정책위의장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20대 국회 정세균 의장은 지난 총선 결과엔 국민들의 개헌 의지가 포함돼 있다고 풀이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 정도가 개헌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헌이 대세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우리 정치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개헌을 둘러싼 우리 정치권의 관심사는 대통령 단임제와 중임제, 대통령제와 내각제라는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돼 있다. 하지만 권력구조만 바꿔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서민경제의 점진적 침체, 청년실업률의 증가, 인구 감소, 급속한 노령화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도 크다. 개헌을 한다면 이런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국민·영토·주권’ 개념
21세기 지식사회와는 안 맞아
무형의 영토 확장한 캐릭터도
국민 대접하는 발상 전환 필요

헌법은 국민·영토·주권의 세 가지가 기본 골격이다. 우선 이 세 가지 부분을 지금의 우리 헌법 구조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역사적 시대 변화를 수용할 것인지를 연구·검토해야 한다.

농업사회는 논밭의 생산성, 산업사회는 공장의 생산성, 오늘의 지식사회는 머리의 생산성으로 뚜렷하게 차별화되면서 국가경제와 사회의 모든 영역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지식사회 시대에는 공동체의 글로벌화에 따라 지식재산의 배타적 무형영토가 형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전쟁은 유형의 영토전쟁에서 무형의 특허 등 지식재산 전쟁으로 변모하면서 무형영토 개념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 점이 지식사회의 역사적 특성으로 부각되고 있다.

조선조 말 우리가 경험한 비극도 농업사회의 안방에서 권력구조 갈등에 얽매여 산업사회로의 역사 변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웃 일본은 국가엘리트들을 유럽 산업혁명 현지로 보내 학습시켰다. 결국 이들이 주축이 돼 메이지유신을 통해 산업국가로 개혁시켰고,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불행한 역사를 참고 삼아 개헌 논의의 초점을 안방의 권력구조와 사회갈등 구조에 한정시켜선 안 된다. 밖을 주시하면서 역사의 거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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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헌법의 기본 요소인 영토 정의는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현재 국가통치권이 미치는 육지·바다·하늘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제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등 온라인 경제영역이 기존 오프라인 경제영역을 급속하고도 월등하게 뛰어넘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무형의 지식재산 대국을 지향하며 관련 법규를 과감하게 개정하고 있다. 우리의 ‘강남 스타일’, K팝 등 문화·예술 지식재산도 이미 해외 시장을 누비고 있다. 영토를 경제활동 공간으로 본다면 이제 헌법의 영토 개념에도 사이버 영토를 포함시키는 미래지향적 발상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헌법상의 국민이라는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문화·예술·게임 캐릭터가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어 사이버 영토에서 맹활약 중이다. 대표적으로 어린이 세계의 ‘뽀로로’는 어느 국민보다 사이버 영토에서 위력적인 경제주체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헌법의 국민 개념에 이런 캐릭터를 포함시키는 것도 사이버 세계 지향적 발상이 되지 않을까.

헌법상의 국민과 영토 개념이 바뀌면 헌법상의 주권도 바뀔 수밖에 없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국가 권력의 기초적 지배권력을 주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산업국가의 주권 개념도 두뇌형 지식국가의 기본 틀에 걸맞도록 바뀌어야 한다.

한번 따져 보자. 기존의 산업국가 권력이 두뇌형 지식국가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가령 예수와 석가모니 정신은 기존의 국가권력을 뛰어넘어 오히려 인간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제 사이버 영토, 사이버 캐릭터가 헌법 개념에 자리 잡게 되면 박애와 사랑 등 종교적 개념이 주권의 핵심 개념에 점진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군신화에 자리 잡고 있는 홍익인간이 우리 주권의 기본 개념에 자리 잡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사랑과 포용의 이웃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헌법은 법치의 기본이다. 법치는 시대가 변하면 그 틀도 바뀌게 된다. 농업사회에서는 하향식 수직적 지배관계였고 산업사회에서는 수평적 관리 관계였다. 반면에 지금의 지식사회에서는 위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격려 관계로 바뀌고 있다. 두뇌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사회적으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혁신자들의 두뇌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고 경제를 키우는 것이 지금 선진 세계의 현실이다.

역사적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산업사회형에서 지식사회형 헌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권력구조 지향적 헌법 개정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사회 특성에 맞는 국민·영토·주권에 관한 헌법 개정부터 논의됐으면 한다.

이상희 대한민국헌정회 정책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