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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SNS·전자코인…화려해진 금융사기 메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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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가정주부 한모(54)씨는 올해 초 지인으로부터 “400%의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첨단제품·서비스로 고수익 유혹
외환·선물 금융기법으로 포장하고
해외 금융기관 원금보장도 내세워
‘나스닥 상장’ 고전적 수법은 여전

정기예금 만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투자 대상을 고르는데 애를 먹던 한씨에겐 솔깃한 얘기였다.

반신반의하던 한씨는 지인에게 이끌려 한 사무실로 갔고, 그곳에서 금융투자업체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를 만났다. A씨는 “89개 언어를 자동으로 통역해주는 스마트폰 앱이 투자대상”이라며 “언어장벽을 없애주는 혁신적 발명품인 만큼, 투자하면 4~5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그가 “재미동포들도 이 앱의 가치를 알아보고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며 각종 투자서류까지 보여주자 의심을 거뒀고, 결국 500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수익금은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고, A씨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한씨는 뒤늦게 그 업체가 금융업 인가도 받지 않은 가짜 회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땅을 쳤지만 A씨는 달아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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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을 약속한 뒤 투자금만 챙기는 유사수신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유사수신업체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금융소비자의 심리를 파고 들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유사수신 관련으로 신고된 건수는 298건으로, 지난해 상반기(87건) 대비 242% 증가했다. 금감원이 유사수신 혐의로 수사당국에 통보한 건수도 64건으로, 전년 상반기(39건) 대비 64.1% 늘어났다.

건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범죄 유형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의 특징 중 하나는 고수익 투자대상으로 스마트폰 앱이나 유사 비트코인 등 첨단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물리적 형태가 없는 온라인 전용 가상화폐다. 한 업체는 “비트코인과 유사한 전자코인을 개발했다. 121만원을 투자하면 140만원 어치의 전자코인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렌트카, 주유상품권, 대형마트 상품권 등을 5∼6% 할인구매할 수 있으며 주차장과 전통시장은 물론, 전화·전기·가스·연금 등 각종 공과금 납부시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설명도 덧붙였다.

외환거래나 선물옵션 등 소비자에게 다소 생소한 금융기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고 선전하면서 투자자를 유인한 유형도 있었다. 이 중 한 업체는 “핀란드 금융분쟁조정국에 가입돼 있어 2억원까지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상장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고전적 수법도 여전했다. 최근에는 일부 액면분할 종목들의 수익률이 좋다는 점을 악용해 “액면분할시 수익이 배가된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업체도 등장했다. 말레이시아 침향목 추출물로 염주, 치약, 비누 등을 만든다는 한 업체는 “상장 후 주가가 상승하면 액면분할해 주가를 재차 띄우는 과정을 반복해 고수익을 올릴 것”이라며 “내년 말이면 나스닥 상장이 가능한데 이 경우 투자금 대비 수천%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페이스북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개발했으니 광고권을 구매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도미니카 보석광산펀드에 가입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등의 얘기로 피해자들을 현혹시킨 업체들도 있었다.

김상록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고수익을 내세워 접근하는 업체가 있다면 서민금융1332(s1332.fss.or.kr)사이트를 통해 해당 업체가 정식 인가받은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전화번호 1332)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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